비굴하고 굴욕적인 열네 살의 삶이라고 하더라도

천동집, 가오동집, 태평동집

by 은선

오빠는 어디선가 라디오를 하나 얻어왔다. 그리고 매일 저녁 최신가요가 나오는 방송을 들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해 주었다. 새벽에는 새아빠와 강에 가서 쳐놓은 그물을 걷으러 따라갔고, 학교 다녀오면 엄마의 건강원에서 일을 도왔다. 펄펄 끓는 배즙, 양파즙, 포도즙이 비닐팩에 똑, 똑 떨어지면 얄궂은 면장갑 하나 끼고 그것을 박스에 넣었다. 가끔 비닐팩이 터지는 날엔 화상을 입기도 했었다. 저녁이면 배 박스에 스티커 붙이는 일을 했다. 스티커를 뜯고 나온 뒷면 종이를 착착 모아 나에게 주었다. 나는 그 종이를 착실하게 모아 뒷장에 그림을 그렸다. 밤이면 세상의 모든 벌레들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오빠는 모기장을 쳐주고 모기약도 뿌려주었다.

평범한 나날들이 계속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 집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빚쟁이가 우리 가족을 찾아낸 것이다. 빚쟁이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집 앞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다. 돈을 갚으라며 새아빠의 멱살을 잡고, 엄마의 팔을 잡아끌었다. 서로 엉켜 몸싸움을 하더니 밭고랑으로 모두 떨어져 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또 한차례 부부싸움이 일었고, 며칠 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니 새아빠와 여동생들이 사라져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동생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고 했다. 그 이상의 설명은 없었고, 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금같이 소중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엄마의 일을 돕고 일이 끝나면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었다. 나와 오빠는 엄마가 일을 마무리할 동안 사무실 소파에 앉아한 번은 엄마를, 돌아서서 한 번은 해 가지는 광경을 봤다. 푹신하고 매끈한 소파에서는 가죽 냄새가 났다. 노을이 지며 오빠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아이스크림이 녹아 손에 흘러 끈적해졌다. 저녁밥은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일 것이고, 그것을 우리 셋이 앉아서 먹을 것이다. 그리고 모기장 속에 들어가 셋이서 잠을 자겠지. 나에게 그보다 안정적인 미래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하루, 이틀, 며칠 동안 안정적인 날을 보냈다.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유 없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슬픈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자전거도 없었다. 여름의 습기만 무겁게 종아리를 휘어 감고 있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나는 새아빠가 집에 다시 찾아올 거라는 것을 예감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그 생각을 떨어뜨리려 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벌써 한 달이나 새아빠에 대한 연락은 엄마에게서 들은 적이 없었다. 이 행복은 깨지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만약 다시 새아빠가 나타난다면 어떡하지? 또다시 예측할 수 없는 지옥 같은 생활을 해야 하는 건가? 두려움에 떨며, 삶을 사는 것에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일까?

꼬리를 무는 우울한 생각을 하며 집으로 걸어갔다. 생기지도 않은 일을 지레 걱정하다니 엄마가 말했듯이 나는 걱정도 팔자였다. 집으로 들어가려고 현관문을 열었고, 바닥엔 익숙한 어른 남자의 신발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다음은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내가 예측한 불안한 미래가 적중했기 때문이다.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공포가 아닌 예측 가능한 불행은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내 삶에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행복하고 평온한 나날이 이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 불안의 고리에서 영원히 쳇바퀴를 돌 것이다. 시작과 끝도 없이 영원히 내 앞에는 공포가 있을 거라는 불안을 안고 말이다.

새아빠가 왔다 간 며칠 뒤 우리는 작은 용달차를 타고 대전으로 이사를 갔다. 시골에서 키우던 백구도 함께 갔다. 무릎 위 박스 속에 있는 백구를 안고 대전까지 갔던 그 시간 동안 백구는 쉬지 않고 멀미를 했고, 휴게소에 들를 때면 초록색 위액을 게워냈다. 그 모든 시간들이 미래의 불행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대전에 도착했다. 새아빠가 살고 있는 집은 두 채였다. 하나는 천동에 있는 집이었고, 하나는 가오동에 있는 집이었다. 천동의 집은 새아빠와 엄마, 동생들이 살게 되고 나와 오빠는 가오동 집에서 살기로 했다. 이유는 아마 나와 오빠의 학교 문제와 전입신고로 빚쟁이가 우리를 찾을 구실을 만들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천동의 집은 언덕 중간에 있었고 어린 내가 보기에도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기울어진 쪽이 절벽이라서 당장 집이 무너져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화장실은 집 밖 공용 화장실을 썼는데, 썩어가는 판자를 대충 세워 놓은 움막 같았다. 온갖 벌레가 기어 다니고 문짝은 썩어 문틈 아래로 발이 보여 누가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좋은 점 하나, 화장실 바닥에 누군가 놓아둔 만화책이 한 권 있었다! 휴지를 안 가져온 누군가가 몇 페이지를 찢었지만, 난생처음 만화책이란 걸 볼 수 있었다.

가오동 집은 방 하나, 부엌과 욕실 겸용(?) 현관 하나가 있는 다세대 주택이었다. 거기서 오빠와 둘이 살았다. 겨울엔 너무 추워서 오빠가 드라이기로 이불속을 데워주고, 가스버너에 물을 팔팔 끓여 공기를 따뜻하게 해 주었다. 대문 옆에 공용 화장실이 있었는데 시멘트 벽이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화장실은 세 칸이나 있었지만 전등은 하나뿐이었다. 똥통은 깊었고, 엄마 말로는 단비가 거기 빠졌다가 똥독이 올라서 큰일 날 뻔했다고 했다. 차라리 말하지 말지. 가오동 화장실은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지옥과 같았다.

천동과 가오동 집에서 생활하던 중 또 하나의 집이 생겼다. 태평동에 있는 집이었는데, 테이블 몇 개 있는 식당에 방 하나가 딸린 구조였다. 그 집엔 다락방이 있었다.

태평동 집에서는 유난히 부부싸움이 자주 일어났다. 새아빠의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태평동에서는 상상을 초월했다. 주먹으로 몸을 때리고 손바닥으로는 뺨을 때렸다. 도망가려 하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고, 허리와 다리는 발로 짓이겼다. 나와 어린 동생들 앞에서 엄마에게 치욕적인 말들을 퍼부었다. 우리는 다락방 위에서 소리치는 게 전부였고, 오빠는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몇 시간의 폭력이 끝나고 나면 새아빠는 김치볶음밥과 라면을 끓여 주었다. 방금 엄마를 죽일 듯이 패고 나서해 주는 음식 앞에서 침이 고였고, 뱃속은 꼬르륵거렸다. 그리고 그 음식들을 배불리 먹었다. 후회 없이 먹었다. 그런 내가, 그런 삶이 비굴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새아빠는 엄마가 없는 틈을 타 나와 여동생 둘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내가 자기 딸도 아닌데 데려가 주어서 이제 나를 딸로 생각하는 줄 알았다. 우리는 경상남도 곳곳을 돌아다녔다. 나는 엄마가 걱정할 걸 알면서도 공중전화로 전화하지 못했다. 맞다, 무서웠다. 내가 전화하는 걸 들켜서 새아빠가 나를 때리거나 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용기를 내지 못했다. 두려움에, 소속감에 비굴해진 나는 묵묵히 새아빠를 따라다녔다.

며칠을 돌아다니다가 돈이 떨어지자 새아빠는 모텔에서 여인숙으로 잠자리를 바꿨다. 여인숙에서는 밤마다 선정적인 영상이 나왔다. 티비가 켜져 있을 때는 자는 척을 했고, 그 티비가 꺼지고 나서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결국 돈이 다 떨어지자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를 봤다. 창백한 유령처럼 변한 엄마가 나를 붙잡고 울었다. 왜 전화해주지 않았냐고 묻는 엄마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랬다. 나는 엄마의 걱정보다 나의 두려움이 더 컸다. 내가 버려질까 봐, 엄마처럼 맞을까 봐, 새아빠에게 미움받을까 봐 그게 무서워서 전화 한 통 하지 못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용기 없고 비굴한 나를 인정했다. 새아빠의 딸이라는 허울뿐인 소속이라도 갖고 싶었다. 가출 사건 이후 나는 새아빠의 신임을 얻어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새 옷과 구두, 가방, 학용품까지 살 수 있었다. 그랬다. 강자에게 붙어서 빌어먹는 그런 버러지 같은 삶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미움받고, 차별받는 오빠보다는 좋은 옷, 좋은 신발을 신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와 오빠에게 들어가는 돈은 많아졌고, 결국 새아빠는 결단을 내렸다.

나와 오빠를 시골에 있는 친할머니 댁에 보내자는 것이었다.

살면서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다. 드디어 새아빠의 폭력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공포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기뻤다. 할머니 집에서는 가난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 외로움은 예상할 수 있었고 그래서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와 오빠는 바로 동의했고 얼마 뒤 친할머니 집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엄마를 그 지옥 같은 곳에 버리고 온 자식이 된 것일까?

아니면 엄마가 나를 끝까지 못 지키고 버린 것일까?

그도 아니면 서로가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까?

열네 살 소녀였던 나에게 삶은 혼돈의 전장이었고, 비굴하고 굴욕적으로라도 살고 싶어 했던 행동들은 죄책감이 되어 인생의 한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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