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딜리버 리 Feb 02. 2024

50년째 나의 선임

휴무일에 엄마 찾아뵈려고 전화드렸다.

-오늘 어디 가세요?

-복지관 출근인데…

-엥? 홀수일인데?

-수강인원이 많아져서 넓은데로 이사 간다고, 청소인원을 더 뽑았어. 신입(이 70살을 훌쩍 넘은) 직원이 잘 모르니까 내가 가리치야 돼서 홀수로 바깠어

-와~ 엄마 선임이시네

-하하~ 그리 됐네

-인자 짝수일 맞차야겠네

-응, 그래라

-몸은?

-감기 걸리서 이때까지 고생하다가 약 먹고 많이 좋아짓다. 니는 괘안나?

-야~ 아픈데 없어요

-항상 운전 조심하고, 다치지 말고, 밥 잘 챙기먹고

-네, 그럴게요. 드가이소

-응, 드가


엄마는 토일을 제외한 짝수일 2시간씩 복지관 청소를 하시고 받는 노동의 대가는 한 달에 많아야 이십 몇만 원이다. 이런 불안정하고 질 낮은 일감을 공공 일자리라 한다. 대한민국 공공의 수준이 딱 이 정도다.


-오며 가며 차비 빼면 얼마 안되구만 혹시라도 다치면 우짤라고… 집에 계시지

-움직이야지, 가만있는 노인네가 더 아프고 더 빨리 늙는다

-살살 운동하시마 되지

-운동하고 일은 다르지. 이래라도 하면서 또래도 만나고 하는 기지

-아파트 경로당에 또래 많잖아. 거기 가시면 되지

-거 가봐야 자식(손주) 내세울 거 없으마 사돈의 팔촌까지 자랑하고 옛날에 자기 집에 금두꺼비 있었다며 거들먹대는 노인네들…(고개 절레절레)

-와? 내가 택배 해서 부끄럽나?

-머라카노? 다칠까 봐, 살이 빠지서 걱정이지. 먹고살라고 택배하는기 머가 부끄럽노?

-엄마가 노인네면서 노인네를 싫어하노?

-젊어도 지 얘기 없으마 늙은 기지, 남 얘기 옮기면서 지 얘긴 줄 알고, 그런데를 뭐 하로 가노? 재미없다

-오~ 엄마 멋있다!

-됐다


80을 앞둔 국졸 출신(임에도 학력 콤플렉스 없는) 엄마는 지혜와 지식은 다르고 학력과 현명함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50 중반의 대졸 출신 자식에게 가르치는 여전한 선임이다.


그나저나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는데, 분명 걱정되고 불안하고 싫은 점이 있었을 텐데 왜 안 하셨는지 물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화민국 No, 스쿠터국 Y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