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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Feb 14. 2024

잘 생겼잖아요

휴무일에 오토바이 타고 엄마 뵈려 가려는데, 비가 내린다. 에잇~ 일단 전화부터,

-오늘 어디 나가세요?

-해상이(막내 동생)가 점심때 온다 해서…

지난번에 한국 들어온다 했는데 그새 까먹고…쯧쯧

-아, 맞다. 해상이 온다했제.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봐야지


엄마 집에 도착하니 해상이네 가족이 우르르 맞이한다. 조카 둘은 어릴 적 보고 처음이라 얼굴이 낯설다. 막내의 곱상한 얼굴은 그대론데, 나이 든 티가 난다.

-아이고~ 오랜만이네. 해상이 마이…(뒷말이 차마 안 나온다)

-늙었제? 인자 40 중반이라

-그러게. 벌써 그리 됐네

-행님은 여전하네. 그대론데.

-어릴 때부터 노안이라 더 안 늙는가 보다

하하하

-얼마 만에 들어온 기고?

-10개월 됐나

-오래 탔네. 계속 배를 탄 기가?

-어, 이번엔 유조선이라 미국과 유럽을 왔다 갔다 했거든

막내는 해양대 졸업하고 해외선사에 취업(당시만 해도 성적 우수자라 가능)했는데, 얼마 뒤 금융위기로 달러화가 급락해서 국내선사랑 월급 차이가 없어졌다. 국내선사 취업했던 동기들은 의무 승선기한을 채우고 육상 근무로 전환했지만 막내는 전환할 육상 근무처가 없어 계속 배를 탔다.


몇 달씩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망망대해뿐인 일상이 없는 근무에 지쳐서 중간에 해상운송 관련회사에 취직했다가 여의치 않아 다시 배를 탔고, 배 길이만 330m라는 유조선의 선장이다.


-은자 언제 나가노?

-이번엔 길게 쉬면서 도선사 시험 해볼라꼬

-아~

-고3 때 어디 갈지 딱히 정한데도 없는데, 행님이 해양대 얘기해 줬잖아

-미안해. 이 일이 힘들고 외로운 줄 모르고. 그런데가 있다 얘기한 건데, 니가 집에 경제적 부담 안줄라꼬 가고.

-아이다. 행님 덕분에 은진이(집사람)도 만났잖아

-니가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바다뿐이니 괜찮지 않을까 했거든. 실제 생활은 1도 모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안 읽어지대. 남는 게 시간이라, 다음으로 자꾸 미루게 되고


엄마가 끓인 떡만둣국을 식구가 함께 먹는다.

-참, 예전에 니 어릴 때 무등 태우고 동물원에서 찍은 사진이 있더라

-(엄마) 해상이가 4살이고, 니가 중3일 때지

-엄마는 그걸 기억해요?

-(엄마) 해상이 데리고 학교 가고 그랬잖아

-아~ 맞다. 엄마 일 나가셔서 해상이 데리고 학교 갔었지. 여자 동기들이 엄청 이뻐했는데

-나는 기억이 없는데

-(엄마) 너거 형이 집을 잘 안 들어와서 그렇지, 지 동생을 마이 이뻐했어. 어딜 가도 데리고 다니고.

-(제수씨) 아무리 이뻐도 대학생인데 동생 데리고 학교 가고, 대단하시다

-잘 생겼잖아요. 자랑할만하죠

하하하

-행님아, 그때 진짜 미안했다

-뭔 말이고?

-행님, 안기부 아덜한테 잡히갔을 때, 내가 행님 친군 줄 알고 행님 집에 있다고 해서. 행님이 잡히가면서 엄마 들어오면 학교에 전화해라 큰소리로 내한테 소리쳤잖아. 그때는 그 상황이 뭔 일인지 몰랐다.

-아이다. 그때 안 잡힜어도 곧 잡힜을 건데 쪼께 일찍 잡힌기다

-그래도…

-거기 아직도 마음에 있었나?

-안 없어지대. 행님 보마 꼭 미안하다 말해야지 해놓곤 말할 시기를 놓치고

-인자 말했으니 훌훌 털어라


선원의 실제 생활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얘기했건만 단 한 번의 원망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겐 남 탓하는 DNA가 없나 보다.

심성 여린 니가 망망대해뿐인 곳에서 외롭고 쓸쓸했을 텐데, 별 탈없이 견뎌줘서 고맙다. 준비하는 시험에 좋은 결과 있을 거야. 꼭.


원숭이 띠 동갑인 막내가 어느덧 40 중반, 예전엔 12살이 큰 차이인 줄 알았는데 같이 늙어가고 있네. 한동안 한국 머문다니 나주곰탕 먹으러 엄마 모시고 봄나들이 갈게. 항상 건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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