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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Feb 28. 2024

추레한 독수리 오형제

내변산

휴무일에 오토바이 타는 게 여전히 재밌는데, 당일치기로 멀리 갔다 오는 건 체력과 시간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 그러고 보니 2023년 8월 파슈수 이후 접힌 채로 있는 미니벨로는 펼 기미가 없고, 대중교통 이용을 안 하니 잘 걷지도 않는다.


’근력 있을 때 돌아다녀야지, 아끼다 X 된다 ‘주의인데 뮤즈였던 그가 옆에 있을 땐 그를 앵글에 담는 것으로 충분했으니 취미가 필요 없었다. 이제 혼자다. 친구도 없으니 뭐라도 하지 않으면 슬픔이, 생각이 몰려온다. 남에게 피해를 덜 주는(골프는 자연과 다음 세대에 악영향을 끼치는 이기적이고 배려가 없는 대표 취미), 나이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돈이 덜 드는 취미를 갖고 싶었다. 몸이 허락하는 한 오토바이, 자전거는 탈거고, 활쏘기에 관심은 계속 가는데 겨울을 핑계 대며 미루고 있다.


휴무일에 산을 다닐까 싶어 등산 좋아하는 동료에게 요즘 동호회 잘되냐 물었더니 휴무일이 서로 안 맞고 참여율 낮아서 폐업 직전이라길래, 혼자라도 산에 가고 싶으면 당일 등산버스 이용하면 되지 않냐 했더니 그런 게 있냐며 놀라기에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 얘기하려는 그 시절에 동료는 태어나기 전이었다.


그래 수십 년 전이었다. 동기들과 술을 먹은 어느 날, 뭔 바람이 불었는지 첫새벽에 일어나서 부산시민회관 앞에서 출발하는 당일치기 산악회 버스를 타러 갔다. 술 먹은 김에 누군가 얘기했을 테고, 술기운에 그러자 한 거기까진 충분히 이해되는데, 왜 실행에 옮겼을까 싶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의 눈치와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용쓰고, 다들 그렇다며 객관적 인양 얘기하는 보통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고, 비슷한 처지(수입, 나이, 직업)의 남과 비교하고, 뒤처진다 싶으면 불안해서 배신하고, 그렇게 아등바등 산다. 취미라고 다르지 않다.


지금처럼 브랜드로 아래위를 빼입고, 고어텍스로 처발처발한 히말라야 등반대 복장은 아니어도 겨울이라 파카에 등산화, 털모자는 기본이었는데, 그때도 유행은 있었던지라 사회적 시선을 따르느라 다들 복장이 비슷비슷했다.


그 와중에 무릎 툭 튀어나온 츄리닝(그중 키가 큰 나는 바지 길이가 칠부 수준), 쭈글쭈글한 청바지, 골덴 바지에 어제 신었던 운동화, 구두, 심지어 슬리퍼에 머리는 떡지거나 까치집을 짓고, 술냄새를 폴폴 풍기는, 최아악~ 20대 남자 5명, 독수리 오형제처럼 주변의 시선과 주목을 끌 수밖에! 차별성, 마케팅의 핵심 아닌가? 저것들은 머꼬 싶은 눈초리를 받는 기피의 대상으로 주목을 받아 그렇지.


버스가 하도 많아서 뭘 타나 싶은데, 버스 차창에 붙은 행선지명에 민주지산이 눈에 들어왔다. 오~ 산 이름이 민주의산! 어젯밤에 술 처먹으며 얼마나 불러댔던 이름인가? 민주주의의 주정뱅이들~ 바로 탔다. 햐아~ 그날 독수리 오형제는 추워 디지는 줄 알았다. 그런 수십 년 전이었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등산 관련 검색하다가 알레버스란 걸 알게 됐는데, 20세기 산악회 버스와 별 차이 없고, 무엇보다 부산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그렇게 유야무야 잊고 있었는데, 알레버스 앱을 우연히 알게 됐다. 서면 지하철역에서 출발한다.(현재는 주말뿐) 머리가 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몸의 편리성이 바로 결제해 버렸다. 필요성 보다 편리성이 소비를 결정한다. 사랑도, 관계도 편리해서 해지가 쉬운 세상이니 어련할까 싶다.


3월 2일(토), 내변산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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