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으로

by 딜리버 리

송경동의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를 읽다가 작년 여름에 흘렸던 땀이 떠올랐다. 불과 몇 개월 뒤면 또 여름이다. 후와~


가만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34도, 폭염 경보에도 택배노동자는 폭염 속에 들어가야 한다.


물 자주 마셔라, 나트륨과 포도당 캔디를 챙겨라, 몸에 이상 있으면 쉬어라, 하지만 배송물량은 늘면 늘었지 줄지 않는다.


세제 한 박스에 식초 말통(은 배송물품 중 최악)을 좁은 비탈길 끝집 3층까지 배송해야 한다. 이 길을 두 번 오르내렸다간 탈진할 것 같아 한 번에 들고 간다. 으라차차~ 기운이여, 솟아라!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이 온몸을 흥건하게 적신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땀이 뚝뚝, 곧 폭우가 쏟아질 징조를 알리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헨젤과 그레텔이 집에 돌아오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빵부스러기를 흘리듯, 땀방울이 곧 사라질 흔적을 남긴다.


수십 번을 오르내린 비탈길, 무슨 일이든 하다 보면 적응된다는데 몸으로 먹고사는 노동자는 여전히 비탈길이 싫다. 얼마를 더 가야 끝인 줄 아니까 길을 오르기도 전에 몸이 힘듦을 먼저 안다.


좁디좁은 계단을 낑낑대며 올라 문 앞에서 힘이 빠져 털썩 놓았다. 벌컥 문 열고 나온 고객님은 땀범벅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택배노동자에게, 아니 왜 물건을 던져요! 쏘아댄다. 허어~


힘이 빠져서…. 대꾸할 힘도 없어 풀 죽은 목소리로 미안하다 말하고, 털레털레 계단을 내려오며 인간에 대한 저주와 증오를 키운다. 신영복 선생이 여름 감방은 옆에 있는 인간 자체를 미워하게 된다 그랬지. 내돈내산이면 뭘 해도 당당한 자본주의에 인간에 대한 예의는 애초부터 없었다.


자신을 폭염 앞에 기꺼이 내놓아야 하는 삶이 힘들고 싫지만
내일도 폭염경보다.


폭염 속으로는 영화 <폭풍 속으로>에서 빌려왔다. 미국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은행을 터는 서퍼들과 서퍼 무리에 잠입한 수사관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로 딱 킬링타임용 영화다. 영화 말미에 패트릭이 마지막으로 서핑 타게 해 달라며, 폭풍 치는 바다로 쏜살같이 달려가지만 노동자는 폭염 속으로 할 수 없이 들어가야 한다. 영화는 영화다.


소금과 나트륨의 차이

청춘에 보내는 송가 3


송경동


아파트 형틀목공일 하면서 제일 힘든 것 중 하나는 한여름 뙤약볕에 지하층 바라시 들어가는 일


콘크리트가 굳으며 내는 열까지 더하면 초고온 한증막도 저리 가라 팬티 바람으로 못 주머니만 차고 빠루 하나씩 들고 뛰어들어갔다 나오는데 누구도 삼십 분을 채 버티기 어려워 그때 부리나케 뛰어나와 탈진할까 봐 한 줌씩 주워 먹던 시커먼 눈이 달린 그 굵고 짭짤한 소금 맛을 잊을 수 없다


거기 비하면 구로공단 알루미늄 랩 만드는 공장에서 찜통 속 만두처럼 푹푹 찌며 일할 때 주던 동그랗고 하얀 알약 같은 나트륨은 참 싱겁고 멋도 맛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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