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결과, 고객의 배려심

by 딜리버 리

오늘 배송물품 물량에 따라 적재하는 시간 차이가 있지만, 적재하고 보통 20~30분 안에 첫 배송지에 도착하면 오전 11시 30분 전후다. 물품 찾고 배송하고, 다음 배송지까지 짧게 운전한 후 다시 물품 찾고 배송하고, 마지막 배송지까지 반복한다.


3시간 정도 빡시게 일한 후 2차 배송물량을 공중급유 하듯 중간에서 받거나, 싣기 위해 복귀한다. 시간이 안 간다는 생각이 들 시간이 없다. 빨리 끝내고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배송능력이 뛰어나지 않은(에이스라 불리는 특급 능력자들과 1시간 정도 차이나는 듯) 몸의 능력을 가진 덕분에 탑차 안 물품을 보는 마음은 불편하고, 매번 시간에 쫓긴다.


배송물품 배송하기에도 벅찬데 몇 년 전부터 신선식품을 담았던 빈 프레시백(라면 박스보다 큼, 이하 프백) 회수가 추가되었다. 처음엔 회수한 프백 개당 푼돈이나마 주더니 지금은 아예 없다. 배송 물품과 섞이면 찾는 게 고역이라 회수한 프백은 선반에 차곡차곡 꽂는다. 배송 끝나면 꽂힌 프백을 하나씩 펴고(프백 찢는다 함) 속에 든 아이스팩과 비닐봉지 등을 꺼낸다.


이 날은 유난히 회수량이 많아서(역대 최대는 한 집에서 9개) 배송 시작부터 프백에 치여서 식겁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한 개 또는 서너 개를 문 앞에서 회수해서 선반에 꽂았는데 나중에 배송 끝내고 선번에 꽂힌 걸 보니 의도치 않게 패턴이 되어 있었다. 어차피 선반에 꽂아야 하는데 다음엔 같은 색깔, 그다음엔 글자 방향으로 정열 시켜봐야겠다.


반복되는 노동은 창조적인 예술과 다른 영역 같지만 어떤 창조도 노동 없이 나올 수 없다. 모든 노동자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모든 예술가는 노동을 한다. 인간이 만든 아름다움의 대부분은 노동의 대가이고, 나는 노동자다!


배려심(配慮心) :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는 마음


그나저나 택배족이 프백 찢을 때 심심할까 봐 배려심 많은 고갱님께선 먹거리를 담는 박스에 쓰레기를 담아두는 정성과 노력을 들인다. 차곡차곡 담느라 수고했을 고갱님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입에선 나도 모르게 씨발~


무슨 일이든 적정한 선, 지켜야 할 최소의 룰은 있다. 제발, 적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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