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eure entre chien et loup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후 5시면 어둑어둑했는데 이젠 6시가 되어도 훤하다. 6월까지 낮은 점점 길어지니 택배족이 흘릴 땀의 양은 많아진다. 낮이 길든 짧든 밤은 찾아온다.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해 질 녘 어슴프레한 시간대에 배송물품이 남아있으면 택배족의 마음은 급해진다.
아파트는 크게 상관없지만 주택가 골목 지번은 길 상태가 제각각이라 헛딛거나 넘어질 가능성이 높고, 주소지 찾아야 하니 캄캄한 밤은 힘들다. 그래서 해지기 전에 끝내려고 하지만 배송앱에 배송지 위치를 뜻하는 핀빨과 몸의 힘듦과 직결되는 배송물품을 말하는 기프트빨은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다. 비탈진 경사로 위 멀리 떨어진 집에서 무거운 액체류와 화장지 대용량을 시키는 운빨까지!
이렇게 낮도 밤도 아닌 애매모한 시간대를 영어로 The blue hour, 프랑스어에선 은유적 표현으로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 한단다. 지금껏 야성 본능이 깨어난 개가 늑대로 변하는 시간대로 알고 있었는데, 해 질 녘 멀리서 다가오는 놈이 날 지켜주는 충실한 개인지,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실루엣만으론 분간하기 어렵고 모호한 시간대라서 그렇게 붙였단다. 뭔가 불확실한 상태, 어떤 상태로 변할지 모르는 불안감을 표현하는 관용구로 쓰인단다. 불확실과 불안의 시간대라니!
개와 고양이 관련 배송 물품이 몇 년 사이에 부쩍 늘었다. 개 사료, 고양이 모래는 무겁고 부피가 커서 택배족이 싫어하는 물품이다. 1인 가구의 증가(그럼에도 여전히 전통적 가족관을 내세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불편 등 여러 이유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었고, 더 늘어날 것이다. 택배족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환한 대낮에도 무리 지어 어슬렁대는 개떼(딱 맞는 표현!)를 골목에서 마주치면 긴장되는데, 개와 늑대의 시간대에 맞닥트렸는데 그중 한 놈이 으르렁대며 다가오면 다른 놈들도 덩달아 다가오는 순간, 공포영화가 시작된다. 참 지랄 같은 게 개들을 쫒기 위해 막대기라도 휘두르다가 개주인이 보면 자기 집 개는 사람 절대 안 문다, 얼마나 온순한 데를 연발하며 난리난리 그런 난리가 없다. 실제 개에게 물리는 사고가 빈번해서 대처법을 교육할 정도이고, 좀 전에 나를 공격하려고 다가오는 중이었는데도! 고양이도 무리 지어 있지만 워낙 독립적 개체라 그런지, 타고난 경계심 때문인지 택배족이 다가가면 순식간에 흩어지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어림짐작 가능한 자연계와 달리 인간계의 개와 늑대의 시간은 언제든 불시에 들이닥칠 수 있다. 사실 그 전에 징후가 있지만 내가 몰랐거나, 그가 아닌 척 숨겼거나.
어제까지 평생을 같이할 줄 알았건만 오늘 늑대로 순식간에 돌변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 지 의아하고 당황스런 순간이 지나고, 할퀴고 물어 뜯긴 상처는 흉터로 남았지만 아물어서 괜찮은 줄 알았다. 개도 늑대로 보이는 캄캄한 밤이 되면 불쑥불쑥 모습을 바꿔가며 찾아오는 슬픔은 여전하고, 너무 쏟아내서 메말라버린 눈물로 가슴은 그리움으로 먹먹해진다.
나 역시 남을 해친 늑대였으니 댓가를 치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서 낮이 오길 바라지만 밤은 끝날 기미가 없고 어둠만이 계속 된다. The wolf bites the wolf, wolves come at any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