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1. 어떤 집단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존재
2. 해태제과에서 1974년 출시한 크래커 타입의 과자
배송차량 탑문 열면 배송할 물건이 기다렸다는 듯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운전할 때 말곤 무조건 뛴다, 엘베가 1층에 없으면 5층 이하는 계단으로 오른다 등등 여러 설들이 있지만 동료들에 비해 엄청 빨리 배송하는 택배족을 에이스라 부른다. 배송구역이 어디든 상관없이 탁월한 배송능력으로 배송 속도가 범접 불가인 능력자들로 동료들 누구나 인정한다. 그렇다고 돈을 더 받는 건 아니고, 일찍 끝내고 쉬는 시간을 빨리 가지는 소확행(?)을 누린다.
수백 개가 넘는 물건 중에 해당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바로바로 찾아내고, 적재할 때 아무렇게나 툭툭 던져두는 것 같은데 기가 막히게 찾는 그들의 능력은 경이롭다. 보다 빠르고 짧게 이동하는 공간지각과 주정차 포인트를 찾아내는 운전 실력 등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배송에 필요한 능력 또한 노력만으론 안되고 타고나야 한다. DNA의 힘, 어디든 적용된다.
어떻게 그렇게 빠른 배송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에이스들에게 물어서 똑같은 배송순서로 적재하고 차량 동선도 똑같이 해봤다. 결론은 뱁새가 황새 쫒다가 가랑이 찢어진다. 어느 정도 흉내 낼 순 있어도 그들과 같을 순 없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사랑이든, 돈이든, 공부든, 일이든 그게 무엇이든 내 능력과 여건에 맞게 살아야한다. 남이 가진 걸 부러워하고 비교하는 순간, 내 삶의 불행은 시작된다. 난 에이스가 되고 싶지 않고, 될 수 없어!
조장에 관리자까지 생각하던 차세대 에이스로 불리던 20대 동료가 무릎이 안 좋아 휴직했다가 결국 퇴사했다. 적재부터 뛰고, 배송 중엔 당연히 뛰던 친구로 한겨울에도 반바지에 아쿠아 트레킹화 차림이었다. 저렇게 무리하면 오래 못 간다고 근무 연차가 오래된 동료가 영화 <짝패>에 나온 대사처럼,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강하다
했다. 본인의 능력을 최대치로 보여주려고 애쓰더니, 몸 상하고 나니 본인이 원했던 목표 자체가 부질 없어졌다. 뭔 일을 하든 하루 이틀 먹고살 거 아니니 몸부터 챙기길.
내가 2030 시절에는 한두 살 차이로 형 대우를 하고, 대우를 받으려고 했던 것 같진 않는데, 요즘은 "형님이 뭐라 하더노? 그러지 말라 했제" 이런 식으로 본인을 '형님'이라 스스로 부른다. 본인이 본인에게 님을 붙이는 웃기는 언어습관은 자기를 너무 사랑해서 생긴 걸까, 남에게 자신은 한 단계 높은 존재인걸 확인시키려는 의도일까?
어쨌든 40대만 되어도 영감 호칭이 자연스러운 남자들만 득실대는 택배족 세계에서 50대는 완연한 노인네다. 팔팔한 2030과 같은 물량을 배송하느라 버겁지만 근근이 따라가고 있다.
입사 시기와 나이대가 같아서 이렇게 저렇게 의지하며 동기처럼 지내던 50대 동료가 계단 오를 때 다리가 잘 안 들어진다더니 근육 파열로 휴직했다가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퇴사했다. 택배는 정신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니 몸 상하면 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번호판 사서 개인택시 한다며 세상 편하다고 연락 왔다. 그래 마음 편하면 됐지, 뭘 더 바라겠나? 택배족 보다 운전시간이 길고, 앉아있는 시간이 많으니 항상 운전 조심하고 건강 챙기시게. 인생사 새옹지마라지 않는가?
나이 들수록 약해지는 건 당연하고, 외로움은 약한 자의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