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읍내에 살 때 산내(산 안쪽 마을)에 볼일 보러 갔다가 동네 중장년 5~6명이 돼지고기에 소주 먹는데 같이 가자는 상용씨 얘기에,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편하지 않아서 주춤거리자,
-아따~ 뭘 그리 빼는교?
-거기 아이고,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인자부터 친하면 되지. 40 넘어가꼬 낯을 가리고 그라노?
이미 한 잔을 한 덕분인지 원래 그런지 몰라도 다들 얼굴만 아는 사이라 데면데면한 나의 낯가림이 무색하게 자주 본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대했다
-흑돼지라… 고기가 엄청 맛나요. 많이 무요
종이컵에 소주가 그득그득 부어진다.
-아, 예.
-(어떤 잎을 주며) 여기 함 싸무봐요
-뭔교?
-옻순. (옻이라니 일단 주춤) 옻 타요?
-안무봐서 몰라요
-그럼 무봐요. 그거 무보면 다른 잎은 묵도 몬해. 상추 이런 거는 싱거버.
옻 탄다는 말만 들었지. 어떤 증상이 있는지 모르는데, 뭘 조심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조심스레 싸서 먹었다.
-옻 타면 구멍이란 구멍은 다 근지럽고 팅팅 불어. X대가리, 똥구멍 다 간지럽다니까
-(헉! 거긴 아인데) 에이~ 빨리 말해줘야지. 이미 뭇는데
-벌써! 어떤교?
-맛있네요. (어떤 맛이라 표현하긴 거시기한데 일단 고소하다. 다시 쌈을 싸며) 옻 안 타나 보네. 괜찮네.
-바로 타기도 하고, 자다가 타기도 하고, 다음날, 며칠 있다가 타기도 하고 그래
-옻 타면 우째야 돼요?
-심하면 병원 가야지. 며칠 씨게 고생하지.
이런 젠장! 그래봐야 죽기야 하겠나 싶어 옻순쌈을 맛나게 먹으며 읍내 가는 버스가 끊긴 줄도 모르고 데면데면한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러자 데면데면한 사람 중의 한 명이 별 일 아닌 듯 구들방에 불 넣어놨으니 자고 가란다. 다행히 그날 밤, 그다음 날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때에 비해 수입이 몇 배 많아졌고(그래봐야 보통의 조건은 안 되지만), 아프면 언제든 갈 수 있는 병원도 가깝고, 온갖 종류의 먹거리와 식당이 있고, 웬만한 곳은 대중교통으로 접근 가능한 편의성과 편리성이 보장된 대도시에 살면서, 옻순, 두릅 나왔다고 그게 머라고 동네 사람들 모여서 돼지고기에 소주 마시는 마음이 한 번씩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