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20집 배송을 끝내고 늦은 점심 먹으러 기사식당에 들어갔다. 70대로 보이는 남자 셋이 아무한테나 글마 절마를 붙이고, 씨발, 좆이 없으면 대화가 안될 정도로 남발하며, 경찰서장이랑 사우나 같이 하는 최민식처럼 자신들의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다. 남자는 늙으나 젊으나 애라던데, 이미 애미애비도 없을 70대 남자애들이 낮술을 먹는다. 바닥엔 소주병 4개, 맥주병 2개가 위태롭게 서있다.
불백(7천 원)에 고기가 남아 공깃밥 추가 시켰는데,
-아지매! 이거 뭔교?
-(내 쪽으로 돌아보며) 와예?
-와보소! 이건 아니잖아
-어마야! 와 이렇노?
누가 한 숟가락 퍼먹은 흔적이 그대로 있다. 양념이 살짝 묻은 부분을 눈앞에서 싹 들어낸 아지매는 아무 말없이 돌아서서 자신의 일을 한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듯 자연스럽다. 뭐 이런 기 다 있노! 분노게이지가 벌겋게 경고등이 뜨며 폭발하려는 순간 뜬금없이 원효의 얘기가 떠올랐다. 지금 시점에 갑자기! 모르고 마신 해골물 덕분에 외국 유학을 가지 않고도 깨달음을 얻은 원효도 있는데, 이게 뭐 대수인가 싶어 그냥 먹었다.
그래도 그렇지! 나(또는 너)는 익숙하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당연함이 계속되면 뻔뻔해진다. #베테랑 #류승범 대사처럼,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아지매! 빈말로나마 미안하다, 밥 바까주께요 정도 말은 해야지요. 이기 뭡니까?
-아이고~ 내가 정신이 없어서…
-정신 없는기랑 이건 다르지요
-미안해요. 밥값 안받을께요
-공짜로 밥 물라꼬 한 말 아입니더
-알지요
일부러 공깃밥 추가한 것까지 밥값을 냈다.
아파트 근처에 있는 시장 쪽 지번 60집 배송하면 끝이다. 이 골목 저 골목 옮겨 다니며 이 계단 저 계단 오르내리다 보니 탑차가 비어 간다. 배송물품으로 꽉 찼던 탑차가 텅텅 비어 가는 모습, 택배의 맛이다. 마지막 집에 배송하고 홀가분하게 차로 돌아가는데 시장 골목 끝으로 해가 넘어간다.
여기저기 돌아다닌 덕분에 사하라, 에펠탑, 태즈매니아, 카슈미르, 마차푸차레, 앙코르와트에서도 봤고, 한국의 여러 도시와 섬에서도 봤던, 그리고 오늘 시장 골목 끝에 걸린 해는 같다. 때 되면 뜨고 진다. 그럼에도 여행지에선 감정이 더 북받치고 뭐 그랬던 것 같다. 내일 반복할 노동이, 지지고 볶는 일상이 없어서 아닐까 싶다. 감정에만 충실해도 되는 시간이니 여행에서 감정이 풍부해지는 듯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불과 몇 시간 뒤면 내일의 노동이 지겹게 반복되지만 오늘의 노동을 마치고 바라보는 해가 당장은 반갑고 빛깔이 고와서 황홀한데, 느닷없이 슬픔이 들이닥쳤다. 여긴 여행지가 아니고 노동 현장이야! 해봤자 한번 든 감정을 없앨 순 없다. 감정이 가라앉을때까지 기다려야한다.
저 멀리 실루엣만 남은 탑차가 보이고, 옛날 사람답게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흥얼거리며 붉은 노을 속으로 택배노동자는 뚜벅뚜벅 사라진다.
https://youtu.be/YPxFfc84GDE?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