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딜리버 리 May 21. 2024

사건의 지평선이 될까, 두렵다

자신에게 전부인 하나를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하는


2000년 부산을 떠나서 서울로 직장을 옮겼다. 그 뒤 프랑스 파리에 2년 정도 머물고, 다시 서울, 지리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동안 여행업자 또는 여행자로 국내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2019년 말부터 5년째 부산에 머물고 있다.


어릴 때부터 낯선 곳에서 잘 자고 잘 먹는 편이었고, 애향심은 애초부터 없었으니 50대 중년의 나이에 없던 수구지심이 갑자기 생겨서 부산에 돌아온 게 아니다.


지금껏 맺어왔던 관계 전부를 포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어 내린 결정이었고, 당시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일테고, 지금은 혼자지만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부산에 살아보니 한겨울에도 웬만해선 영하권으로 내려가지 않고, 바다를 접하고 있어 한여름에도 내륙에 비해 덜 덥고, 300만 명이 넘는 도시라 기본적인 보건의료,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젊은 시절 살던 곳이라 익숙하지만 젊음만으로 살았던 곳이라 낯설다.


사는 곳의 기후와 사회적 환경은 삶의 질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그런 점에서 부산은 노인이 살기 좋은 도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영하권으로 내려가는 겨울과 열대야로 잠 못 드는 한여름은 노인이 견디기 힘든 조건이니까. 나이 들수록 멀리 떠나기 힘든 몸이 되는데 배로도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일본이 있어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다시 2019년 말로 돌아가서 가진 거라곤 여행 갈 때 가져갔던 트렁크가 전부였고 돈 없고 수입이 없어서 대중교통이 용이한 곳으로 부산역까지 걸어갈 수 있는 영주동에 원룸을 구했다. 처음 구한 곳은 문현동이었는데 너무 가깝다는 걱정에 계약금을 날렸지만 하루 만에 군말 없이 옮겼다.


먹고살아야 하니 기존 경력과 관련 업종에 취업지원을 했지만 보잘것없는 경력과 50 넘은 나이에 걸려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절반 밖에 안 되는 50대에도 취업 못하는 말로만 100세 시대 운운. 마침 확장세에 있던 이커머스에서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뽑았고, 택배기사로 취직했다. 집에서 직장까지 버스로 30분이면 출근 가능했고, 오며 가며 버스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좋았다.


영주동 원룸이 오래된 건물이라 곰팡이 끼고, 결로가 있지만 그나마 좁은 베란다에 창이 넓어 채광이 좋고, 조용하고 대중교통이 편해서 옮길 이유가 없었는데 2021년 말, 회사가 강서구로 이전했다. 대중교통으로 왕복 2시간이 넘게 걸리니, 어쩔 수 없이 직장 근처 원룸으로 옮겼다.


지금 원룸은 주변에 생활편의시설이 없는 공단 근처이지만 어차피 퇴근시간이 늦어서 크게 불편하지 않고, 휴무일에 오토바이와 자전거 타기 편하고 도서관과 미술관이 가까워서 좋았다. 어느덧 2년이 지났고 6월 중순에 직장이 또 이전한다.


내 팔자에 역마살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놈의 회사는 택배회사라 그런가 2년마다 옮기는 걸 보니 역마살 자체다. 이전할 곳과 현재 머무는 곳은 대중교통으로 왕복 2시간 이상 걸린다. 젠장~ 또 옮겨야 한다.


오토바이 타고 가서 근처를 훑었는데, 지금 보다 좁은 원룸이 월세는 더 비싸다. 복덕방 사장님 말로는 지하철역 근처는 10만 원 정도 더 비싼데, 여기는 버스만 다니는 애매한 위치라 그나마 싸단다. 대중교통, 생활편의시설은 현재 머무는 곳보다 낫다.


계절 바뀌고 환경 달라지면 이동하는 게 당연한 유목민이 몇 년 월급 받다 보니 농경족이 된 줄 알았는지 옮길 생각만 해도 귀찮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때 되면 철새가 이동하듯 옮겨야 한다.


2년 전 이사할 시점엔 1년 가까이 연락 없던 S가 연락와서 다시 만나는 행운이 찾아왔는데, 이번에는 그 행운을 기댈 수 없지만,사건의 지평선 너머의 사람만 아니면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https://youtu.be/BBdC1rl5sKY?feature=share​d


































​​​






매거진의 이전글 눈부신 안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