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1935~2024)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는 원래 ‘탱크 바퀴 굴러가는 소리'였지만 전두환 군사정부의 검열을 의식한 출판사의 만류로 수정했단다.
민중시인, 문단의 거목이라는 표현은 현학적이지 않고 난해하지 않은 글로, 억지로 꾸미지 않은 수수한 말로 가난했던 마음을 달래주던 시인에게 붙이는 수식어로 진부하다.
시인이 가난해서 사랑조차 버려야 했던 이웃의 젊은이를 달래준 1988년엔 갓 스물을 넘은 젊은이었다. 가난해서 버림받는 이들이 여전한 2024년에 50대 중반을 넘어가는 아저씨가 되었다. 가난도 사랑도 그대론데 시인은 떠나버렸다.
이제 그 누가 사랑하고 싶은 가난한 이웃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