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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May 30. 2024

밥과 노동, 흔하니까 귀하다

밥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절실하다


급식일지 – 이름


조혜영


식당 아줌마에서 여사님으로

여사님에서 조리원으로

조리원에서 조리 종사자로

조리 종사자에서 조리 실무사로


조리 실무사


그 이름을 얻기까지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이름을 얻기 위해 파업을 하고

천막 농성을 하고 교육감실 점거 농성을 하며 얻은

소중한 이름


조리 실무사


학교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은

선생님으로 불러줘야 한다고

교직원들에게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얘기해도

여전히 아줌마나 여사님이라 부른다

어떤 선생님은 이모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름이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밥을 먹는 문제보다

좀 더 치열한 뭔가가 있을 법한데

밥이 사람을 살리고 밥이 사람을 만든다는데


밥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절실하다


 『그 길이 불편하다』, 푸른사상, 2024



여전히 이모님, 여사님으로 불리는 전국의 수많은 급식 노동자는 자신들의 급식노동이 시로 만들어진 걸 알까? 구체적 노동을 다룬 시가 얼마만인지, 반갑다. 더구나 연작시라니!


사랑, 이별, 아픔, 슬픔 같이 일상적으로 겪는 감정은 문학의 소재로 차고 넘치는데, 우리네 삶 어디에나 존재하고, 반드시 존재해야 살아갈 수 있는 노동은 문학작품의 소재로 희귀하다.


시인과 소설가가 노동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노동의 구체성과 사실성이 없는 사람이 노동을 소재로 떠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노동의 보편성보다는 특별한 의식(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을 썼던 건 아닐까 싶다.


노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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