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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심이 생맥주

by 딜리버 리

몇 개월 내근 업무로 꿀을 빨다가 회사 이전 후에 배송 업무로 재배치되었다. 꿀만 먹을땐 그게 얼마나 달달한 지 모른다. 인공지능으로 첨단 물류시스템을 갖추고, 주문하면 당일 배송도 가능하다는 로켓같은 회사라 그런가 입사한 지 4년 차에 두 번을 이전했다. 덕분에 부산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며 여행하는 삶을 산다.

두 번의 이전으로 물품 분류 및 작업인원 세팅부터 정상 운영되는데 시일이 걸린다는 걸 안다. 최소 한두 달은 배송 물량이 엄청많아지기도 하고, 물품 분류도 엉망이라 근무환경이 힘들다.


예측한대로 배송 물량이 늘었고,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지원 가고, 평균 걸음수가 2만 5 천보 이상으로 증가했다. 평소처럼 일하는데도 막배(마지막 배송)가 늦어져서 연장근무를 반복 중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니까, 그 놈의 안정화도 오긴 올테지?


하루는 숨이 턱턱 막히는 땡볕, 다음날은 하루 종일 비, 어제는 사우나처럼 습하고 더웠다. 한낮의 더위가 머물고 있을 집에서 밥 먹는건 3일간 고생한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어, 외식으로 결정.


식당 간판에 불 켜진 곳은 보이지 않고, 죄다 고깃집 아니면 술집뿐이다. 맥주에 안주 먹으면 저녁 되겠다 싶어서 찾아간 양고기 전문점은 첫 주문이 3인분(39,000원)부터, 횟집은 모둠회(소)가 35,000원,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의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는데 판매방식은 여전하다. 1인 가구에겐 편의점 도시락뿐인가? 아마도 조리된 양고기, 횟감 1인분씩 파는 방식이 편의점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


두리번대다가 1층에 생맥주 글씨가 유독 눈에 띄는 가게로 들어갔다. 손님이 한 명도 없다. 동네 장사집이라 곧 마치나 싶어,

-장사 합니꺼?

-하모요

-오백 한 잔이랑 계란말이 주이소

맥주를 들이켠다. 그러고보니 집에서 혼맥은 해도 술집에서 맥주는 오랜만이다. 더구나 생맥주를! 하루 종일 줄줄 흘린 땀으로 수분이 부족했는지 목에 걸리는 것 없이 쭈욱 쭈욱 들어간다. 계란말이 나오기 전에 한 잔 들이키고, 한 잔 추가. 맥주를 리퀴드 브레드(Liquid Bread)라더니 1,500cc에 계란말이, 과식으로 양고기, 횟집이랑 가격차이 없다.


한쪽 벽에 켜진 TV에선 또다른 현실을 알려주는데, 멍하니 보며 맥주를 홀짝 거리는 장면이 일본 영화에서 본 손님 없는 한적한 술집 같다. 생맥주 마시러 가끔 와야지 했는데 오판이었다. 그 날만 손님이 없었을 뿐 이미 혀가 살짝 꼬인 5060 중년 남자들로 북적댔다.


낯가림 있는 동년배 남자는 기웃댈뿐 지나친다. 혼술, 혼밥 하기 좋은 동네 술집, 동네 밥집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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