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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Dec 15. 2023

상위 4%야!

토스뱅크의 만보기는 목표 걸음수 달성하면 돈 주고, 아직 개봉 전이라 뭔 선물일지 모르지만 아이템을 준다. 나야 돈 받아서 좋은데, 푼돈이어도 몇십만 명이 이용할 텐데,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궁금하긴 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데 말이지. 더구나 돈놀이하는 은행인데!


어쨌든 배송 끝나면 만보기 앱 들어가서 걸음수만큼 있는 선물을 확인한다. 9원, 20원, 비밀의 샘(아이템) 등이 열린다. 앗싸~ 오늘도 얼마 벌었다며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동료가

-행님, 멉니꺼?

-니 토스 아나?

-인터넷 말입니까?

-어, 거기에 만보기 있는데, 그거 걸음수만큼 돈도 주고, 선물도 준다

-얼마나예?

-9원도 주고, 20원도 주고 한다

-하이고~ 그런 푼돈으로 머할라꼬예?

-은행에 100만 원 맡기마 하루에 얼마 붙노?

-어, 그라마 쎈긴데


하루에 다문 얼마라도 생기니까, 하루에 만 보 이상은 걷는 택배족과 딱 맞는 만보기 프로젝트가 중단 없이 계속되길 바라며, 토스뱅크 굴비 적금을 개설했다. 나 같은 사람 또 있겠지?


100세 시대, 초고령화 사회라면서 정작 그 나이의 절반인 연령대가 먹고살 경제적 구조를 국가는 준비하지 않고, 사회는 맞이할 기색도 안 보인다. 그러니 특별하거나 전문기술 없는 (경력 단절이 있는) 50대가 제대로 된 직업(대단한 걸 바라면 말도 안 꺼낸다. 4대 보험, 주 5일)을 구하는 건 정말 어렵다. 과거 이력으로 몇 군데 지원했지만 팀장(심지어 대표) 보다 많은 나이로, 나만 잘난 줄 아는 무능력으로, 오라는 데가 없었다.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가능하다니, 지원했다. 지금껏 구성원에 여성이 많고, 회의와 토론이 수시로 열리고, 목표와 진행방식이 전체에 공유되고, 개인 간 팀 간 업무 협력이 필수적인 직업을 20여 년 해왔는데, 하루 정해진 물량만 배송하면 되는, 돈내기 방식의 개인플레이가 만연된 남자뿐인 조직(의 문화는 정말 끔찍해!)이 정말 안 맞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견뎠다. 다행히 몸이 받쳐줬고 어느덧 4년 차가 끝나간다.


어디 내세울 만큼 자랑스럽진 않아도 내 노동으로 먹고사는 일이라 부끄럽진 않았다. 당신에게 부끄러웠단 말을 듣고, 당신에게 실망했고 나는 비참해졌다. 한때 택배기사가 엄청난 돈을 버는 양 언론이 떠들어댔지만 그래봐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는 절대 상위 10%에 들 수 없다. 그래도 당신이 부끄러워한 직업 덕분에 마음의 빚을 3년 동안 갚을 수 있었고, 걸음수는 당당하게 50대 남자 상위 4%야!


직립보행이 사족보행에 비해 에너지 소비효율을 높이고, 양손 사용이 자유로워지면서 진화 과정에 큰 영향을 줬다지. 직립보행이 현재의 인간을 만들었으니, 직립보행으론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 택배족이 인간의 최종 완성형 아닐까? 인간은 걷는 DNA를 타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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