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테투안
2010년대 중반, 모로코 북쪽 도시 테투안(현지인들은 떼뚜안에 가까움)에 6개월 가까이 머물렀다. 탕헤르와 세프샤우엔 중간에 위치한 곳으로 관광객이 많이 오는 도시가 아닌 데다 그나마 찾는 관광객은 스페인계가 대부분인데, 전형적인 동북아계 얼굴을 반복해서 볼 일은 거의 없다. 시장, 극장, 카페, 식당, 빵집, 어딜 가나 시선을 끄는 편이고 은근히 즐기기도 했다.
어느 날, 떼뚜안 시내 전경과 멋진 앞산을 한눈에 보려고 카사바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 메디나 골목을 헤매던 중, 길거리 좌판에서 멜론을 팔던 아저씨가 불쑥 내쪽으로 오더니 너무 반갑게,
-올라!
-(드물게 보는 동양계 외국인에 대한 관심이니, 연예인이라도 된 듯) 올라!
-(반갑게 악수 나눈 후 데리자-모로코어-로 유창하게 뭐라 뭐라 얘기하신다.)
-(이 상황이 뭔가 싶고, 갈 길 가려는데 자폰이 들리기에 반사적으로-에휴~ 몸에 밴 반일주의-) 농, 꼬레아
-오~꼬레아
-위
-(한국을 안다 싶어도 대부분 수드, 노드부터 하는데 이 분은) 피이양
-농, 서울
-오~ 쎄울!(주변 사람들에게 쎄울, 쎄울 광고한다. 주변 사람들 쎄울! 이러면서 다가온다)
-(점점 불편해지기에, 손짓과 함께 상호 언어가 다를 땐 한국말을 그냥 쓴다) 갈게요
-농!(그러더니 멜론을 크게 잘라주며 내민다)
-(허~ 이걸 어쩐다? 이미 자른 걸 안 받을 수도 없고. 한 입 베어 물었더니 꿀이 흐른다. 맛있다! 동시에 얼마를 주야 되나?)
-오~ 쎄울!(잘 먹는데! 또 잘라주는데 아까보다 더 크다. 한통에 10딜함 정도니까 3딜함이면 충분하겠지)
-(이것도 맛있다. 지나친 친절은 돈을 부르는 걸 알기에 여행자의 경계심이 곤두선다)
-쎄울, 봉 보야지(그리곤 손을 흔든다. 헐~)
며칠 전이었다. 여행자의 경계심은 예상을 빗나가기도 한다.
우연찮게 멜론 좌판을 또 지나치게 되었다. 역시나 주변 사람에게 유쾌하게 구라를 풀고 있는 아저씨한테 혹시나 하며 살람무 알리꿈 인사 했더니, 쎄울 이러며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곤 주변에 뭐라 뭐라 얘기하는데 본인이 말했던 쎄울이 바로 이 사람인데, 다시 왔다고 말하는 듯하다.
-쎄울~(또 멜론을 큼직하게 깎아주며 먹으란다)
-(이번엔 멜론 한 통 사려고) 와헤드(1개), 샤할(얼마)?
-(봉지에 2통 넣길래) 농, 와헤드
-(단호하게)아따시옹!(결국 3통 담는다)
-(에라~모르겠다. 30딜함이면 되겠지) 샤할?
-1유로만 줘
-엥?
-10딜함
-(한국어) 너무 싼데요
-(데리자) 괜찮아. 잘 먹던데 많이 먹어(하는 듯)
-슈크란
-살람무 알리꿈
오늘이다. 여행은 그냥 친절하기도 하다.
그 뒤로도 몇 번 멜론 좌판 앞을 지나쳤고 그때마다 반갑게 “쎄울!”하며 손짓을 하던 아저씨, 모로코를 후다닥 떠나오느라 인사도 못하고 왔는데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게 유쾌하게 구라를 풀고 있겠지. 그나저나 아이폰(4였는데) 카메라에 어떤 기능이 있기에 이렇게 찍혔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