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펭귄
여행을 포장하는 말은 많지만 아무리 멋지게 포장해도 결국은 낯선 곳에서 먹고 자고 보고 만나는 일이다. 즉, 익숙하지 않은 일상에서 머물다 오는 일이다. 당연히 그만큼 불편이 따른다. 특히, 현지인의 삶과 밀접한 여행일수록 날씨, 음식, 냄새, 소리, 문화(생활방식, 종교), 언어 등에서 오는 이질감은 커진다. 현지인과 일정하게 거리를 둔 호텔에서 낯섦을 느끼기 힘든 점이다.
뇌과학자에 의하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극적 상황에서 나온단다. 진짜 모습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단다. 별일 없던 일상에선 조절되던 감정이 자신이 위험에 처하거나 곤란하고 회피할 상황에선 숨겨져 있던(또는 숨겨왔던)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통제권 밖으로 나온단다. 여행은 낯선 환경이고 인간의 생존본능은 낯선 환경에 민감하므로 그 사람의 본성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려면 여행을 같이 떠나라는 말은 여행의 낯선 환경 때문이지 싶다. 단 며칠이라도 일상을 벗어나서-자유, 일탈, 해방을 느낀다는-좋아하는 여행, 과연 일상을 벗어난 걸까? 무료하고 별일 없는 일상의 몇 달 또는 몇 년을 압축해 놓은 게 여행 아닐까? 즉, 여행에서 보인 모습은 일상에서도 나타난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
과거의 여행 감정이 되살아날 때가 있다. 여행이 가진 매력이다. 신문기사를 보다가 10여 년 전, S와 호주여행 때 감정이 찾아왔다. 정말 움직이지 않는 코알라, 유선형 그 자체인 돌고래, 저런 몸집인데 왜 바다표범도 신기하고 좋았지만, 리틀펭귄(정확한 학명이 있는데 기억이...) 귀갓길은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다.
리틀펭귄 투어버스를 타고 필립아일랜드에 도착해서 해안가로 가니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있다. 어둑어둑 어둠이 찾아왔고, 조명이 꺼지며 조용히 있으라, 카메라 플래시 절대 안 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아무 변화 없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꿈틀대는 물체가 보인다. 펭귄 한 마리가 물속에서 나오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바닷물과 모래가 접한 부분이 들썩대듯 여기저기 수많은 펭귄이 일어난다. 오오오~ 낮은 감탄음이 저절로 나온다. 그들의 귀갓길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쳐둔 안전선 밖에서 지켜보는데, 각자의 집이 있는 듯하다. 누구는 모래사장 근처, 누구는 비탈진 언덕, 누구는 더 먼 곳으로 짧은 다리로 뒤뚱대며 혹은 저게 뛰는 건가 싶게 귀엽게 총총 폴짝대며, 마치 귀갓길에 술 한잔 걸친 듯 비틀대며 모래사장을 걸어간다. 비탈진 언덕을 오르다 미끄러질 때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받쳐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아아~ 놀라운 건 집에 있던 가족들이 마중 나와서 서성대다가 자신의 가족을 보면 부퉁 켜 안으며 반긴다. 잘 있었어? 잘 다녀왔어요. 그렇게 묻고 답하듯, 그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의 여행은 누군가의 일상이므로 여행은 일상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