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데친 Decin, 도착

by 딜리버 리

어디서 타는지 표기가 없어서 티켓 판매창구에 가서,

-대체 어디서 타요?

-(대체 몇 번째야? 안 그래도 새벽 근무라 지쳤는데 살짝 짜증 난 듯) 플랫폼! 업스테어!!

-(10시간 넘게 비행기 탔고, 5시간 가까이 기차 기다리고 있거든! 씨발!!) 아니! 어느 게이트??

-20분 전에 출발 모니터에 뜨거든!!!

-아, 예…(그렇지, 유럽이 그랬지. 그래도 그렇지, 친절하면 좀 좋아, 이래서 심야노동은 발암물질이라고 WHO가 HBO에서 그랬나 보다. 씨발~) 때앵~큐!!!!

05:22 드디어 기차를 탔다. 과거엔 독일 땅이기도 했던 보헤미아 서북쪽 데친까지 엘베강을 따라 쭈욱 올라간다. 잠시라도 빨리 프라하 중앙역을 벗어나고파 직행이 아니라 까를로 비바리 쪽으로 가는 환승 열차를 탔다. 평균 속도 100km 정도에 기내 모니터는 광고 없이 지도에 이동경로만 표시되는 기차인데, 스펙(의자상태, 좌석 간 여유, 와이파이 등등)이 KTX보다 좋은 데다 우리 칸에 달랑 4명이라 한적해서 너무 좋다. 그대여~ 새옹지마를 기억하라!


우스티까지 대만족이었는데 데친행 기차는 연착에 직장인과 학생(아니, 근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타고 내리는 와안~전 와안~행 통근 열차다. 자리에 앉을 수가 없을 정도에 사람들로 북적대고 대여섯 군데를 들리며 느릿느릿 간다. 아무리 그래도 언제나 끝은 있는 법.


아침 7시 넘어 드디어 데친역 도착. 서울은 폭설이 내렸다는데 여기는 중부 유럽의 겨울답게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이번 여행의 베이스캠프인 #케이하우스 K-HAUS까지만 이동하면 길고도 긴 하루가 끝난다. 역을 나오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한글로 된 케이하우스, 우와아~ 완전 바로 앞이다. 가까워서, 눈에 바로 띄어서 느무느무 반갑다.


키박스에서 열쇠 찾아 현관문을 여는 순간, 포근하고 편안하면서 아늑한 집과 깔끔하고 깨끗한 소규모 부티끄호텔의 중간스런 느낌에 은은한 향이 나는데 오오~ 내 취향이다. 더 지내봐야 알겠지만 첫인상은 굿~ 혼자 지내기 충분한(부킹닷컴 사진은 실물에 비해 너무 못 찍었다) 싱글룸에 챙겨 온 거 없는 짐(청바지, 셔츠 각 하나, 속옷, 세면도구 등)을 풀고 낯선 동네랑 친해지는 1순위, 뚜벅이로 한 바퀴 돌려고 나서려는데 온라인으로만 인사 나눴던 주인장 K님 알현.


여전히 현역인 여행업계 대선배와 여행업에서 택배노동자로 변심한 후배가 어쩌다 보니 정서가 어울리고, 죽이 맞아 폭풍수다를 3시간여 떠들고, 케이하우스 바로 옆 베트남식당 판다에서 아점을 먹었다. 케이님 얘기론 체코에서 베트남인들이 식당과 소매점을 많이 한단다. 아~ 그래서 프라하 중앙역 경비가 베트남인이야 물었는구나. 그때는 뜬금없이 베트남이라고 하나 했더니. 어쨌든 입맛 맞는 식당이 숙소 옆에 있는 건 분명한 장점이다. 그나저나 세계 어디서나 베트남 음식과 터키 케밥은 가격 대비 만족도 최상급인데, 한국에선 둘 다 왜 맛에 비해 비싼 걸까?


케이님은 일하러 가고 내친김에 데친성까지 뚜벅뚜벅. 인포에서,

-도브리덴~ 성 구경 왔는데요

-마음껏 둘러보세요

-실내로 들어가는 문이 다 잠겼던데요

-가이드랑 같이 입장해야 해요

-가이드 신청은 어떻게?

-여기서 하면 돼요

-신청할게요

-1인은 가이드 안 해요

-아~(도돌이표를 능가하는 응답 방식)


뭐 유적, 유물이야 프라하, 드레스덴에서 충분히 볼 거니 안 봐도 그만이고, 거대한 암반 위에 세운 성과 중정에 있는 우람하게 펼쳐져있는 나무와 조형물인 줄 알았던 실물 공작새 본 걸로 충분하다. 그나저나 찾는 이도 많지 않은데 진입로 공사로 분주하다. 동서양 토목건설족은 연말 공사를 좋아하는 걸까?


다시 데친역 앞으로 버스 타고 복귀. 저녁거리를 살 겸 슈퍼마켓 빌라에 들렀다. 현지인들이 사는 빵(오호호~ 싸다! 한국은 왜 비싼 걸까?)을 따라 사고, 100% 적힌 사과주스, 양배추샐러드, 요거트, 올리브 절임, 산딸기잼, 샴푸 샀다. 숙소 옆 슈퍼마켓, 또 하나의 엄청난 장점이다. 고기류 좋아하는 사람은 눈 뒤집힐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하나 얻는 게 있으면 하나를 내주는 게 세상 이치이듯 해산물은 거의 없다. 마침 탑마트 감천점에선 수목돌풍 김장대전 한다는 카톡 문자를 보낸다. 당분간 못 가요~


그러고보니 25일 아침 5시에 한국 집에서 출발, 26일 아침 7시에 체코 숙소에 도착했다. 이렇게 고난해서 홈이 스위트하길 바라는 걸 지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긴 밤 지새운 프라하 중앙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