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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친역 구내식당

by 딜리버 리

공항과 기차역, 버스터미널의 식당들이 그냥저냥한 맛에 그저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성비가 별로인 게 대부분이라 데친역 내렸을 때 얼핏 본 구내식당 역시 당연히 패스~


별다른 목적과 기대가 없는 여행이지만 1일 1주를 하기로 했으니 술집을 찾는데, 눈에 안 띈다. 아까 동네 구경할 때 본 곳까지 다시 걸으려니 살짝 피곤하다. 아~ 숙소 바로 앞 데친역에 구내식당 있지. 이왕 겪을 실망이면 빨리 겪자 싶어 구내식당 문을 들어서자 대낮인데도 대여섯 테이블에 손님이 있다. 여전히 기대가 안 되는 실내 분위기. 살짝 살찐 레닌을 닮은 듯한 인물이 맥주 마시는 모습을 내세운 브레즈낙 Breznak뿐이다. 시키고 싶어도 다른 게 없다.


여행 가기 며칠 전,

-행님, 체코는 뭐가 유명한데

-카프카, 밀란 쿤데라, 밀로스 포먼이 체코 출신이고, 로봇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도 체코 작가야

-그런 거 말고

-당연 프라하 아니겠나? 그리고 맥주 소비량 1등이래

-맥주?

-우리나라 마트에 파는 필스너 우르켈, 코젤이 체코꺼잖아, 버드와이저도 체코 지명에서 유래했대

-아~ 그거 실컷 먹겠네

-말라꼬! 한국에서도 마시는데. 맥주 종류가 수백 종이란건 동네마다 맥주를 만든다는 거고, 그걸 생맥으로 무야지.


다시 구내식당,

-맥주는 이것뿐?

-그것뿐

-여기 맥주?

-왓?

-너거 동네 맥주?

-오브코스

-(메뉴판에 500cc와 330cc 구분은 알겠고 뒤에 11이 있고 없고에 따라 가격만 다른 4종류) 뭐가 달라?

-맛이 달라

-(발효인지 뭔지에 따라 다르다는 것 같아) 오키, 330 각 1잔씩. (카드를 꺼내는데)

-온리 캐시

-(트래블월렛으로 모든 걸 다하는 중인데 의외라) 카드 안돼?

-안돼

-(오~ 당당함! 살짝 마음에 드는데) 그래.


한국인의 입맛을 통일시키고 있는 백종원이라도 된 듯 맛의 차이를 느끼려고 경건하고 엄숙하게 마신다. 살짝 차이가 있는 듯 아닌 듯 구분이 안된다. 가볍지 않은데 묵직하지 않고, 살짝 씁쓸하면서 단 맛이 돌고, 청량감이 엄청나지 않은데 날렵함을 갖췄다. 어느새 두 잔을 비웠다. 음식도 그렇지만 술도 싸고 맛있는 게 좋은거다. 오며 가며 종종 들러서 한 잔 할 듯 싶다. 더 마시고 싶은데 잠이 슬슬 온다. 빨리 시차 적응해야 되는데… 랜덤으로 틀어놓은 음악(또는 라디오)에서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가 나온다. 이들에게 이 노래는 K팝일까, 그냥 팝일까 궁금하네. 성공만 하면 한국 관련성 1만 있어도 애국심과 민족적 우월감으로 웅장해지는 K민들의 반응이야 너무 많이 봐서 질리고.


찾아보니 데친역 앞에서 버스로 40분 거리에 양조장이 있고 투어도 한다. 플젠에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 투어는 땡기지 않는데 여기는 가볼까 싶다. 머무는 기간은 한정인데 마음 끌리는 게 자꾸 생기면 어쩌자는 거지.

시외버스로 Krásná Lipa와 Pravcická brána를 다녀오며 젊은 여인을 따라 걸었더니 배가 너무 고파 데친 돌아오자마자 데친역 구내식당에 갔다.

-(그래도 한 번 와봤다고 반갑게) 도브리덴

-(표정으로) 뭐 주문할래?

-브레즈낙 500cc 한 잔과 (배를 움켜쥐며) 아임 헝그리, (메뉴판을 가리키며) 미뉘트키 어떤 거야?

-(또 표정으로) 잠시 기다려. (주방으로 가더니) 어제 그 동양인 또 왔어, 나와바(라고 외치는 듯)

-(다른 여인이 오더니) 뭐 주문하려고?

-미뉘트키가 어떤 거야?

-치킨 스테이크와 머슈롬

-호토바 질다는?

-감자튀김

-그럼 치킨 스테이크 줘

-감자튀김도?

-응. (카드를 내밀자)

-우린 현금만

-온리 캐시?

-어제도 묻더니…

아, 맞다.


맥주소비량 1위의 자리를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오후 4시의 데친역 구내식당엔 혼자 또는 일행과 함께 어제처럼 오늘도 맥주를 마시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술은 낮술이지!


번역기 돌리니 간판에 적힌 Koli(무엇이든), JIDELNA(식당), 해석하면 브레즈낙 맥주뿐인 어떤 메뉴도 가능한 기차역 구내식당이 가게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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