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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 종점 마을 Krásná Lípa

by 딜리버 리

택배족은 30분 이상 운전할 일이 거의 없다. 이동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렸다간, 그랬다간 시간 안에 배송을 끝내기 힘들다. 그렇게 치고 빠지는 방식에 최적화된 택배족이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기차역에서 5시간 넘게 기다렸으니 피로가 쌓였겠지, 나이가 있으니 몸이 예전과 같지 않으니 시차 적응도 바로바로 안될 테지. 결국,


만화책 보다가(감히!) 한 권을 다 보지도 못한 채 밤 8시도 안 돼서 까무룩 잠들어 새벽 3시 즈음 깼다. 푹 잤더니 말똥말똥, 잠이 올 리가 없다. 핸드폰 하다가 만화책 읽다가 에잇~ 잠도 안오는데 움직이자 싶어 양배추와 올리브 절임에 엄청 단 산딸기잼에 빵, 요거트, 드립 커피와 사과 주스로 아침 먹고, 어젯밤 케이하우스 주인장 케이님이 추천해 준 Krásná Lípa 마을과 Pravčická brána(천국의 문) 고고.


데친역 앞에서 434번 녹색버스 타고 엘베강을 따라 독일 쪽으로 올라가더니, 계곡 안쪽으로 접어든다. 제법 수량이 풍부한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개천 양옆엔 숙박시설과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한국도 그렇듯 여름철엔 피서객들이 제법 오나 보다. 베트남인들이 소매점을 많이 한다더니 짝퉁 의류 메이커와 각종 장난감 등을 파는 가게 주인들이 하나같이 베트남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가는 끝나고 마주 오는 차량이 있으면 반드시 잠시 서야 하는 좁은 길이 이어진다. 오가는 차량은 서로 먼저 가겠다며 머리부터 들이미는 일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섰다 갔다를 반복한다. 평소 운전 환경과 달라 낯선데 부끄럽다. 달랑 승객 대여섯 명 태운 버스는 가파르지 않은 완만한 오르막 길을 구불구불 달리는데 30분 정도 지났나? 어느 버스 정류장에 남자 승객 3명과 버스기사가 내리더니 같이 담배를 피운다. 처음 보는 낯선 모습인데 나도 내리고 싶을 만큼 정겹게 연기를 뿜어댄다.


길 양옆으론 위로만 자라게 세팅이 된 듯한 쭉쭉 뻗은 나무와 벌목된 나무들이 보이기에 이 동네 선주민은 나무꾼과 벌목꾼, 숯쟁이였겠다 싶은데, 느닷없이 소나 말 키우기 좋은 완만한 구릉지대의 목초지가 펼쳐진다. 그렇게 쭉쭉 뻗은 나무와 목초지가 번갈아지고, 개천이 개울로 바뀌는 1시간 30분 뒤 Krásná Lípa 마을에 도착했다. 돌아가는 버스가 2시간 뒤라 마을에서 버텨야 한다.


마을 여기저기 부착된 설명문에 예수 재림 같은 기적과 집단 생활할 수 있는 건물과 광장 사진과 그림이 있어 짐작컨대 1800년대 말 제법 큰 규모의 종교 공동체 마을이 들어섰나 보다. 예전에 이쪽에 종교 공동체가 있었단 얘기를 들었는데 그중의 하나인가 보다. 체코가 얀 후스를 비롯해 타락한 종교에 대한 개혁의 소리를 낸 유구한 역사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기득권 세력을 피해 이쪽으로 모였을 수 있겠다.(얕은 잡지식과 사잔으로 추측한 완벽한 뇌피셜~ 캬하)


산책하기 좋은 흙길엔 아름드리 나무들이 즐비하고, 공원처럼 조성된 가족 공동묘지가 있고 종교지도자의 영묘는 복원 공사 중이다. 천천히 둘러보는 중에 교회 종소리가 울린다. 오~ 그때 지은 교회인데 여전히 마을 주민들이 예배를 보는가 싶어 찾아갔다. 교회 문은 굳게 잠겼고 건물 벽과 창문은 낡고 허물어져 가는데 수리 흔적이 없다. 종소리는 때 되면 자동으로 울리나? 싶은데 시계탑 시계는 정상 작동되고 있다.


되돌아가는 버스 시간까지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커피 한 잔 하려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한 눈에 오래된 건물에 카페스런 가게가 있다. 번쩍이는 네온사인 간판이 아닌 데다 실내조명이 눈부실 정도로 밝지 않아 장사를 하는지 창에 바짝 붙어 안쪽을 살피는데 점원과 눈이 마주쳤다.

-(눈치로) 뭐 해? 들어와

-(에스프레소 위에 낯선 체코어가 있기에 혹시 아메리카노 같은 걸까?) 이거 뭐야?

-밀크(그렇지, 아메리카노 따위가 있을 리 없지)

-에스프레소, 샌드위치


에스프레소는 괜찮았고, 샌드위치는 맛있었다.


숙소 와서 검색해 보니 종교 공동체와는 무관한 19세기말에 들어선 상당한 규모의 직물공장으로 사진 속 건물은 집단 수용시설이 아니라 직물공장이었다. 종교 지도자의 영묘와 가계도는 그때 사장이었던 독일인 사업가 칼 어거스트 디트리히의 무덤이었다.


설익은 지식과 근거없는 정보는 사실을 왜곡하고, 왜곡된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기만하고 편견을 확산한다. 긴가민가할 땐 확인하는 수밖에, 아닌 걸 확인했을땐 바로 수정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덜 추해진다. 달리 방법이 없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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