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가 정류장에서 2km 정도 올라가면 된다는데, 허~ 산불이 크게 났었나? 검게 그을린 채로 서있거나 여기저기 잘린 나무들이 초입부터 즐비하다. 완만한 오르막이라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오늘은 천국을 가는 사람이 나 혼자인가? 한적한 산길을 호젓하게 걷는데, 통행로가 아닌 곳에서 중년의 백인 남자가 갑자기 툭,
-엥? 거기 길이 있어?
-내가 만든 길이야
-왓?
-어디 출신이야?
-코레아
-(역시나) North or South?
-남쪽, 넌?
-독일(아~ 독일애들 대체적으로 영어 잘하던데)
-(생각도 못했겠지) East or West?
-HaHaHa!
살짝 심심하던 차에 나이대가 비슷한 트레킹 동무가 생겼다.
-여기를 체코는 보헤미안 스위스라 하고, 독일은 잭슨 스위스라 한다는데, 왜?
-스위스처럼 풍광이 멋져서 그렇게 부른다네
-스위스 풍광이 멋진 걸 인정하는건가?
-서로 다르지, 그래서 여길 오는 건데
-그러게
그러고 보니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골목길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계단으로 형성된 부산의 달동네 중의 하나를 한국의 산토리니, 마추픽추라고 부르는 게 어이없었는데, 여기는 국립공원 명칭 자체에 다른 나라의 국가명을 붙였네. 친스위스사대주의자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천국의 문 올라가는 입구의 가게 문이 잠겼다. 겨울철 비수기라 그런가? 좀전까지의 동행은 별 일 아닌듯 해브 어 나이스 트립 하더니 바로 내려간다. 냉정한 놈!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긴 그랬어 주변을 살피니 통행금지 푯말 너머로 사람이 다닌 흔적이 선명해서 가봤다. 아~ 엄청 가파르고 발 디디는 것도 힘든데 어제 내린 비로 미끄럽다. 몇 번 주욱 미끄러지다 결국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오는데 젊은 여성과 마주쳤다.
-(혹시나 다른 방법이 있나 싶어) 닫혔제?
-응
-여기(통행금지 붙은 곳을 가리키며) 안돼
-내려가야지
하더니 성큼성큼 걷기 시작한다. 평소 면 먹는 속도와 걷는 속도에서 빠지는 편이 아닌데, 앞선 여성과의 간격이 줄지 않는다. 이거 뭐지? 살짝 오기가 생겨 걸음을 빨리 했는데도 축지법을 쓰는지 간격은 그대로다. 누군가가 영원하자며 그렸을 또렷하게 깊게 파인 하트는 불과 며칠 뒤면 언제 그렸나 싶게 지워진다. 애초부터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쉬운 거라 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하는 걸 수도 있다.
마침 여성이 물 마시느라 쉰다. 기회는 이때다. 그대로 지나쳐 걸음의 속도를 올린다. 아휴~ 이게 뭐라고, 혼자 용쓰는 꼴이 에구~ 안쓰럽다. 정류장에 붙은 배차표에 40분 뒤에 버스 도착, 당연히 기다려야지.
얼마 뒤 정류장에 도착한 여성, 배차표를 보지 않고 바로 걸어내려 간다. 으음… 뭐지?
-저기요
-네?
-버스 여기서 타야 되는데
-걸어가려고요
-(배차표 안 본 걸 아니까) 40분 뒤에 옵니다
-네, 저는 걸어가께요
-아~ (가오 상해!)
뭐나 씐 듯 따라 걷는다. 워킹 능력자 덕분에 걸음에만 집중하며 졸졸졸 흐르는 개울의 맑은 소리를 실컷 들었더니 마음이 맑아진 듯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30~40분 걸어서 계곡 입구 삼거리에 다다랐다. 어느 방향이세요? 잘 가세요 인사라도 하랬더니 버스 정류장처럼 조금의 망설임 없이 독일 쪽으로 우회전해서 뚜벅뚜벅 걸어간다. 대체 어디까지 걸을까? 냉정한 년!
번역기에선 Pravčická는 오른쪽이라는데 왜 천국의 문이 되었을까? 그나마 착하게 산 자들이 구경할 확률이 있는 게 천국인데, 살아있는 누구나 볼 수 있는 풍광을 왜 천국이라고 했을까? 천국의 문에서 조금 더 오른쪽에 작은 Pravčická brána가 있다고 구글맵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