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구한다고 프라하 시내를 몇 시간 헤매며 호스텔에서 호텔까지 훑었건만 토요일이라 방이 없다. 도저히 방이 안 구해져서 프라하 밖으로 나가자 결정하고, 안 그래도 쿠트나 호라 가려고 했으니 내일 오전에 둘러보고 프라하로 돌아오면 체크인 시간, 아~ 빈틈없는 계획이라니, 이런 긴급 돌발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멋진 놈!
쿠트나 호라는 관광지라 프라하처럼 방이 없을 수 있다. 구글맵 검색하니 콜린이 바로 인근, 인구 10만(이면 데친 보다 큰 도시다)인데 딱히 내세울 관광자원이 없는 듯하다. 좋아! 그렇게 무작정 콜린행 기차를 탔다. 도착해 보니 역 앞이 휑한 게 싸한 기운이 닥쳐온다. 이거거~ 자테츠의 데자뷔! 야간열차 타고 오는 사람들이 들리는지 다행히 케밥집이 문 열었기에 후다닥,
-카드, 캐시?
-카드. 여기 처음인데 도와줘
-뭘? 어디 출신이야?
-사우스 코리아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오호호, 뭐꼬?
-나 우즈베키스탄, 학생이야
평소 같으면 오, 그래~ 이러며 어울렸을 텐데 형이 너무 피곤하다. 어서 눕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근처에 호텔이든 여관이든 알려줘
-잠깐만, (어떤 지도맵을 보더니) 택시 타고 000 호텔 가자고 해
-거긴 방이 있어?
-백 푸로, 거기 항상 손님 없어
젠장~ 풀 부킹이란다. 콜린도 방이 없다. 그새 택시는 떠났고, 하~ 자포자기 상황인데 날씨가 추워서 밖에 있을 수가 없네. 구도심으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걷는다. 웬만히 작은 도시도 구도심 광장에 호텔 하나는 있던데, 없는지 못 찾는지 안 보인다. 여태까지 문 닫지 않은 가게에 물어봐도 모르겠단다. 어쩔 수 없다. 콜린역 회군, 서울역 회군 따위 꺼져라!
콜린에서 자고 다음날 오전에 쿠트나 호라 둘러보고, 프라하로 돌아올 계획이었는데 수면 부족과 발가락 상태로는 걷는 게 힘들 것 같아 새벽 4시 기차로 프라하로 돌아왔다. 기차 타고 갔다 기차역에서 졸다가 다시 기차 타고 돌아오며 꾸벅꾸벅 졸았던 여행자의 비참처참한 마음, 아는가?
새벽 5시, 케밥집도 문을 안 열었으니 다른 데가 문 연 곳 없고, 24시간 편의점, 찜질방 없고, 박물관이든 뭐든 9시는 돼야 문을 여니 또 걸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도보왕 도전 중인 줄 알겠다. 아이고~ 발가락아, 미안해, 사랑해, 견뎌줘서 고마워.
방 구하느라 얼마나 바쁘게 돌아다녔는지, 몸이 힘들었는지 사진 한 장 못 찍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