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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트램 투어

by 딜리버 리

어찌어찌 카렐교까진 왔다. 낮에 왔을 땐 이러다 카렐교 꺼질까 걱정될 정도로 사람이 넘쳐났는데, 어쩌다 지나가는 한 두 명뿐이다. 자세히 볼 순 없지만 느긋하고 조용하게 볼 수 있다.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추운 데다 배 고프고, 발가락까지 아픈 3중고 여행자는 프라하의 실내공간이 온전하게 품어줄 시간까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마침, 트램이 지나간다. 그렇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트램에 설치된 발매기에서 24시간용 티켓을 120 코룬에 구입하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타면서 추위도 피하고, 관광지 아닌 프라하도 살피고, 아침 일찍 움직이는 현지인 모습도 볼 수 있는 일석삼조, 아닌가? 더구나 24시간 무제한으로 메트로도 사용할 수 있다. 어째 이런 생각을 순식간에 해내지. 아~ 머리 좋아! 그 좋은 머리로 직전까지 생고생 개고생했던 건 금세 잊고 자뻑에 빠지는 한심한 놈!


처음 3번과 두 번째 10번은 타자마자 후드티 뒤집어쓰고 졸도했다가 기사 양반이 체코어로 “종점이야, 내려”하면 “네?” “종점이라고!” “네에” 부스스 일어나서 서둘러 내리느라 어떻게 가는지, 여기가 어딘지 어딜 가는지 종잡지 못했다.


그래도 쪽잠을 연달아 잤더니 몸상태가 조금 나아졌다. 17번은 카렐교 옆을 지나 블타바강을 따라 운행하는데 조깅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이고, 집모양도 구도심과 다르다. 강 너머 언덕에는 부자스런 집들이 연이어있다, 그러다 어느새 까무룩.


어쨌든 트램의 장점이라면, 운행구간은 달라도 레일을 달리니 종점 방향이 겹치는 노선이 있어서 얼마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다, 지면과 붙어있어 타고내리기 편하고-실제 유모차에 애기 태우고 이동하는 엄마들을 심심찮게 본다-저출생 문제가 위기라면서 맨날 돈 더 줄게 소리나 해대는 정치권은 해외 연수 와서 전용 대절차 말고 대중교통 타보란 말이다, 바깥 풍경을 마음껏 볼 수 있다, 관광업 종사자가 아닌 현지인을 만난다 등등, 무엇보다 지치고 걷는 게 지긋지긋한 여행자에게 추천한다.


다시 지금의 트램으로 돌아와서, 얘네들 춥게 사는 거야 익히 알지만 트램에 난방을 안 한다. 처음엔 풍찬노숙 아닌 게 어디야, 만족했는데 몸이 어느 순간 조건에 익숙해지자 어디선가 들어온 외풍에 몸을 움츠린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더니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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