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할 때, 그 상황이 끝나면 새로운 기회나 다른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어떤 일이 끝나면 다른 가능성이 열린다는 의미의 영국 속담이란다.
11월 25일 출발해서 12월 12일 도착한 오랜만의 긴 여행이었다. 예전에 아들이 걱정된 엄마가 사주를 봤더니 역마살이 엄청 세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가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했고 뭐든 잘 먹고 어디서든 잘 잤다.
여행 떠나기 전에 냉장고 비우고, 빨래하고, 집을 쓸고 닦았다. 여행에서 도착하면 텅 빈 냉장고 열어보고, 빨래하고, 집을 쓸고 닦았다. 내 나름의 의식이었다.
나이가 들어선 지, 오랜만의 긴 비행으로 지쳤는지 이번 여행을 끝내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든 것도 깬 것도 아닌 상태로 의자에 멍하니 계속 앉아있었다. 프라하 떠나기 전날 갔던 오래된 재즈클럽의 음악이 좋아 재즈라디오만 켠 채. 기존 의식이 깨졌다.
정신 차려보니 냉장고는 텅텅 비어있고, 겨울여행답게 두 번에 나눌 정도로 빨랫감은 많고, 아무도 없던 집에 먼지는 어떻게 찾아오는지 궁금하지만 진공청소기와 스팀청소기로 쓸고 닦았다. 이제 커피콩을 볶는다. 커피콩 향이 조금씩 퍼지고 어느 순간 자욱해진다. 일상이 시작된다.
내일 아침에 눈 뜨면 익숙한 일상은 현실감을 더할 테고, 모레부터 출근이니 한동안 쉬었던 팔굽혀펴기와 스트레칭으로 택배 근육을 준비해야 한다. 이제부턴 별다른 일 없는 일상이 반복된다.
또 언제, 어디로 갈지 낯선 곳으로 떠날 여행을 준비하는 일상, 반갑다. 이 와중에 오랜 관계를 끝내는 문자를 주고받고, 그러고 보면 일상만큼 낯선 것도 없다.
-형, 도착했어.
-고생했네
-고생은 무슨, 실컷 놀다 왔는데
-ㅎㅎ
-참, 윤석열 구속 집회 정보 어디서 알 수 있노?
-유튜브 뭐라카노 찾으면 된다
-ㅋㅋ
-오늘은 저녁 7시, 내일은 5시 서면 태화백화점( 없어진 지가 언젠데, 옛날 사람)
-오키. 집회 마치고 술 한잔 해요
-그래
아~ 집회 일정을 유튜브로 알다니, 지루하고 별 다를 일 없는 일상이라지만 일상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른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