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을 머물렀던 데친역 바로 앞 #케이하우스, 이틀인가 지났나? 새벽에 너무 일찍 깨기에 몇 년만의 여행이라 시차적응이 안 되나 싶었다. 한국에서도 출근 알람 울리기 전에 깼고, 체코 여행 내내 그런 걸 보니 그냥 나이 들어서 길게 못 자는 거였다. 노인들 새벽잠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하기사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충분히 피로한데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맥주라도 마시면 눈이 스르르 감기는 걸 막을 수 없다. 밤 10시 전후에 잠들고 새벽 4시 전후에 눈이 떠지는 건 충분히 잤으니 당연한 깨는거다.
침대서 뒹굴거리며 오늘 어디 갈까, 구글맵으로 여기저기 훑다가 혹하는 데가 있으면 기차나 버스 시간표 확인하고, 이 동네엔 뭐가 있나 정보 수집을 한다. 어디를 가든 떠나기 전 이때가 설레는 시간이다. 막상 가보면 그저 그렇거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말처럼 실망할 때도 많다. 반대로 정보도 없고 기대도 없이 갔다가 의외로 만족하는 곳도 있다. Tisa 암석군, 데친성 건너편 암벽 위, 우연찮게 들른 동네, 식당 등이 그렇다. 이불 속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장치가 없다. 벌써 2시간이 지났건만 여전히 밖은 깜깜한 밤이다.
이제 식사준비를 할까? 방문을 나서면 센스등 켜지는 띵~ 하는 소리, 휑하다 싶을 정도로 여유로운 복도(전직 파리민박 운영자는 이 넓은 복도에 이케아 2층 침대가 몇 개 놓을 수 있나 싶다)는 서늘한 밤 기운으로 맞이하고, 모든 룸에 욕실이 있으니 공용욕실을 전용욕실로 사용 중인 싱글룸(이 얼마나 좋은지, 혼자 지내는데 불편 없을 정도로 넓고, 방안에 화장실 없으니 위생적이고) 숙박자는 화장실 들러서 고양이 세수하고 2층 공용부엌으로 내려간다.
전기포트에 물이 끓는 동안 원두를 갈고, 야채샐러드와 빵, 잼, 치즈, 햄, 요거트를 챙긴다. 귤이나 오렌지, 삶은 달걀이 추가되기도 한다. 물 외의 먹거리는 여행자로 퇴근할 때 숙소 옆 슈퍼마켓 빌라에 들러 장을 봐온다. 내가 볶은 콩이 아니고, 같은 브리타를 써더라도 물맛이 다르고, 하리오 드립방식 필터라 커피맛이 다른가 싶었는데, 참나~ 아라비카+로부스타 블렌딩 제품이었다. 어쩐지 탄 맛이 강하다 싶더니…
이렇게 첫날부터 12일간 변함없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데 이참에 한국 돌아가면 아침을 빵으로 할까 하다가 한국은 빵값이 비싸구나, 그나저나 밀가루 가격만큼 싼 것도 없을 텐데 빵값은 왜 비쌀까? 물가 차이가 있지만 여기 슈퍼에서 파는 크로와상이 천원도 안 하는데, 웬만한 한국 빵집보다 맛있다.
매일 반복되는 여행지 숙소의 평온하고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막상 떠나기 전에는 현재 누리고 있는 평안과 아늑함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집보다 나은 시설을 갖춘 숙소라도 집이 가진 익숙함을 넘을 수 없으므로 불편함을 가진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집이 스위트하지 않듯 사람도 그렇다. 현재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여행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선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이제 어슴푸레하게 날이 밝았고, 아침 먹었으니 나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