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전국 곳곳을 가보진 않았지만 어디서나 눈에 띄는 베트남 식당, 설마 여기도 있을까 싶은 작은 동네에도 있다. 마치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흔히 베트콩이라 부르는)의 세포 조직처럼 어디든 있다. 비가 내렸다 말았다를 반복하는 겨울에 체코 어딜 가더라도 뜨끈한 국물이 땡길 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와인 산지인 멜닉에 왔으니 좀 비싸더라도 우아하게 폼 잡으며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멜닉성에서 엘베강과 블타바강을 내려다보며 와인에 코스요리를 먹자.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하지만 12월의 월요일, 하~ 여기도 다른 데처럼 문을 연 곳이 없다. 박물관, 성당은 그렇다 해도 레스토랑마저 문을 닫았다. 허탈하게 돌아서서 몇 걸음 떼는데 베트남 식당 간판이 딱! 여기까지 와서 베트남 식당 안 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다. 운명을 피할 순 없다.
가게를 들어서자 중국계 베트남인 직원이 니가 여긴 왜 왔어? 표정으로 동양인 손님을 맞이한다.
-(메뉴판 사진엔 스프링롤이 프레시해서) 스프링롤 프레시 오어 프라이?
-(당연한 걸 묻지) 프라이
-(메뉴판 사진을 보여주며) 프레신데…
-(참나, 말 두 번 하게 하네) 온리 프라이
-그래
튀긴 스프링롤과 (어제 호스텔 앞 베트남식당서 맛있게 먹은 기억으로) 치킨 샐러드 시키고,
-(와인 산지니까 당연하게) 멜닉 와인 있나?
-아니
-멜닉인데?
-(얘가 아까부터 말 두 번 하게 하네) 놉
-어디 건데
-(주방 쪽 갔다 오더니) 칠레
어차피 멜닉 와인 먹어도 다른 와인과 구분 못하는데, 와인 산지 아니었으면 베트남 식당서 와인 먹을 생각을 했을까? 이또한 귀한 경험이라 퉁치자.
치킨 샐러드는 소고기를 잠깐 담갔다 뺀 콩나물국처럼 닭고기 찾는 게 힘들 정도로 빈약하고, 야채는 무 종류 하나에 마트에 파는 소스를 듬뿍 뿌린 그냥 소스범벅이다. 한국 분식집 양배추 듬뿍 샐러드 보다 맛없다. 오~ 치킨샐러드는 시작에 불과했다. 스프링롤 한입 베어문 순간 뭔가 잘못됐다 싶어, 불친절한 직원을 불렀다.
-이거 엄청 짜
-짜?
-응, 스프링롤이 짜
-우리 집 맛이야
-뭐? 니네 집은 짜다고?
-안짜
-짜다니까
아~ 더 말해봐야 뭐 하겠나 싶어 관뒀다. 어떻게 스프링롤이 짤 수가 있지? 어쨌든 짠 스프링롤을 처음 먹어본 귀한 경험을 추가했다.
짜장면이 중국식당, 김치(또는 된장)찌개는 한국식당의 기본인 것처럼 스프링롤과 치킨 샐러드는 베트남 식당의 기본메뉴 아닌가?. 기본은 판단의 근거다.
웬만해선 음식 남기지 않고(어서 망해야 하는데 자신들 음식 맛없는 거 눈치챌까 봐), 다음엔 절대 안 온다고 다짐하는 나 홀로 복수족인데 굳이 남긴다. 친절은 어디에도 없었는데 계산할 때 팁까지 포함된 카드 결제를 반강제로 하게 하다니, 참나! 구글맵에 평 올리겠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