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3월 1일), 평소와 다르게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왔다. 택배노동 초반에는 주어지는 대로 휴무일을 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힘든 노동강도에 비례해 몸의 피로가 쌓이는 게 느껴져 가급적 3일을 초과하는 않는 근무 일정을 유지하려고 한다. 50대의 피로는 축적될 뿐, 이다.
그동안 휴무일이 배포되면 동료들끼리 필요한 날짜로 조정해서 변경했는데, 회사가 자랑스레 강조하던 직접 고용을 없애고 외주용역으로 전환한 후 퇴사 인원이 많아지고 남은 동료가 줄면서 휴무일 조정이 쉽지 않다. 그래도 그럭저럭 지내왔는데, 아무리 용을 써도 휴무일 변경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긴다. 누구는 그럴 때 쓰는 게 연차라지만 언제든 탈이 날 수 있는 50대의 몸을 위해 남겨야 하고, 무엇보다 연차는 소중한 휴가 때 쓸 거라고!
지지난주 6일, 지난주 5일 연속 근무의 여파로 피로가 쌓였나 싶어 스트레칭과 팔굽혀펴기를 생략하고 1시간 더 잤다. 아침밥을 먹으려는데 머리가 살짝 띵하니 아프고, 헛구역질이 났다. 속은 더부룩하고. 으음… 감기 몸살, 독감이 걸려도, 전날 술을 진탕 마셔도 멀쩡한 식욕이었는데, 영 입맛이 없어서 준비하던 아침밥을 냉장고에 넣고 출근했다. 택배족 6년 차에 처음 있는 일이다.
속을 비워서인지 진정되나 싶었지만, 불편함은 남아있었다. 하필, 오늘 배송노선이 엘베 없고 옥상 연결 안 되는 5층 아파트 9동에 불규칙한 계단의 연속인 난이도 최상급 지번 구역이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더니, 불행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고 불쑥 닥쳐온다.
배송 초반에는 속의 불편함이 신경 쓰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저장된 당이 다 소진되어서인지 몸에 힘이 안 들어가고 속이 엄청 쓰리다. 평소 먹던 대로 점심을 먹자니 속이 두려워서 편의점에서 1+1 죽을 사서 먹었다. 살기 위해 죽을 먹는, 죽을 맛이다.
1회 차 배송이 힘든 덕분에 2회 차 배송은 꿀노선. 더구나 내 입맛에 맞는 동네 빵집이 있는 곳이다. 배송을 끝내고 빵집으로 쑤욱~,
-또 오셨네
-네. 또 왔습니다
-올린 거 잘 봤어요?
뭔 말이지? 캄파뉴와 치아바타 2개씩, 복귀하며 먹을 달달하고 소프트한 단팥빵 2개를 집어 들고, 잠봉뵈르+치즈 바게트가 보이기에 냉큼 추가.
-(수줍은 표정으로) 올린 거 잘 봤습니다
-네? 뭘?
-티스토리에... 누나가 얘기해서 봤거든요
-아~ 브런치요
-(엄마가) 빵 맛은 어때요?
-(아들이)뭘 그런 거 물어봐요?
-아닙니다. 제가 기본 빵을 좋아하는데, 입맛에 딱 맞습니다. 지금 맛이 유지되면 충분히 알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고맙죠. 빵집은 얼마나 하셨어요?
-독립해서 차린게 8개월 즈음...
-그전엔 다른데 소속돼서 하셨구나. 아~ 맞다. 가게 이름이 왜 오성빵집이에요?
-(수줍게 웃으며) 제 이름이 오성0이라 앞글자 두 개로
-(다 같이) 하하하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역시 수줍게) 이거 드릴게요
-뭡니까?
-올리브오일에 발사믹, 빵을 찍어드시면...
-고맙습니다
#오성빵집, 빵맛이 입맛에 맞는 게 1순위지만 오고 가는 마음이 있어서 #동네빵집, 가는 거다. 냉동실에 빵봉지가 4개나 있는 나는 12척 남은 이순신보다 유리하다. 크하하~
#내돈내산 빵맛 후기
1. 케이크가 아님에도 한국 빵은 대체적으로 지나치게 달다. 마땅찮다. 어느 빵집이나 있는 단팥빵류는 특히! 집 근처 탑마트에서 파는 단팥빵과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도 구분할 수 없다에 단팥빵 1개 건다. 오성빵집 단팥빵도 무척 달다. 팥소를 직접 만들지 않으면 가능한 지 모르겠지만 당도를 팍 줄이고, 견과류를 넣으면 어떨까 싶다.
2. 잠봉뵈르+치즈 바게트, 바게트 식감이 지난번에 비해 약간 질긴 듯한데, 식감이란 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까. 어쨌든 괜찮다. 만족이다. 다음에 또 사 먹어야지.
몇 년 전, 목수일을 하는 미대생 출신 동네 형님과 교토 여행을 같이 간 적이 있다. 어딜 가나 건축물의 크기에 압도해서 입이 떡 벌어져서 왜 일본=미니멀, 당연한 이미지가 생겼을까 싶었다. 그 형님 "웅장하고 압도적인 크기에 비해 마감은 아주 간결하네. 일반 시민들은 압도적인 크기는 따라갈 순 없을 테니, 마감을 선택한 건가?" 혼잣말로 중얼중얼.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여행지에서도 여기는 배송하기 힘든 구역이다 싶은 게 택배족에게 자연스레 들어오듯, 목수 눈엔 다르게 보인다 싶었고, 그날 이후 여행이 풍부해졌다.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이런저런 빵을 먹었는데, 그 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재료를 쓰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제1의 필수요소가 먹는 건데 맛있으면 그만이었고, 유명 관광지 둘러보고 사진 찍느라 바빴다. 생존의 필수요소인 빵(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의 여행이 풍부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오늘(3월 2일), 어제 아침으로 오늘 아침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