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엄마, 쌀국수 먹으러 가요
-쌀국수?
-지난번에 경성대 앞 라이옥 쌀국숫집, 맛있다 했는데…
-아~ 베트남 사람들이 일하는데... 그러까?
-네. 6일에 전화드릴게요
오늘,
-뭐 드실래요?
-쌀국수
-쌀국수랑 월남쌈(고이 꾸온), 반미 시켰어요
-아이고~ 다 묵도 못할낀데 뭘 그리 마이 시킸노
-다 못 무면 남기면 되지, 맛은 봐야지
가게 벽에 걸린 호찌민 그림을 보시더니,
-저 양반이 호지명 맞제? 북쪽에서 공산당 이끌고 월남까지 공산화시킨 사람?
-네, 그전엔 프랑스 독립운동했고, 예전에 베트남 갔을 때 보니까 집이든 가게든 어딜 가나 저 양반 초상화가 걸려있대
-국민들이 많이 좋아하나 보네
-아이들은 호아저씨라 부를 만큼 좋아했고, 저 양반 죽었을 때 남은 게 쓰레빠와 책 몇 권뿐이었다 할 정도로 소박했대. 물론 후계권력들이 그런 호찌민을 이용하는 측면도 있을 거고.
-미국도 전쟁에서 저 양반한테 진거 아이가?
-저 양반 죽고 몇 년 뒤에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했지
-캄보디아도 어딜 가나 사진이 걸려있던데, 그 사람은 왕이라며?
-어, 맞아. 전 국왕, 현 국왕
-캄보디아가 왕국이대?
-응. 정식 명칭이 캄보디아 무슨무슨 왕국일 거야
낙동강 오리알처럼 혼자가 되어서야 엄마를 찾았건만 언제나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밥을 챙겨주셨다. 잘 묵고 다니라며.
엄마가 내 옆을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나이가 되신 지는 진작부터였지만 모른 척 아닌 척했다. 더 늦기 전에 엄마와 지내는 시간을 갖자, 휴무일엔 밥 먹고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갖자 했건만, 나중에 뻔히 후회할걸 알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만든다.
엄마는 활동량이 줄어서 배 고픈 줄 잘 모르겠다, 많이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며 내 먹는 걸 챙겨주시고 정작 본인은 시원찮게 드신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다행히 여기 쌀국숫집이 입맛에 맞는지 양이 많다면서도 국물까지 드시고 월남쌈도 1개 반을 드셨다. 엄마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지는 아들이 되었다.
밥을 먹고 근처 카페로,
-여는 와이래 어두컴컴하게 해 놨노?
-ㅎㅎ. 큰 길가 프랜차이즈들은 보다 환하게, 개인 카페들은 반대로 더욱 어둡게. 뭐 마실래요?
-(메뉴판을 보시더니) 허니-레몬차?
-오미자차도 있는데, 레몬이라 좀 실 건데…
-안무 봤으니 무보자, 아들 아니면 언제 무보겠노?
-ㅎㅎ, 맞아. 언제 무보겠어
주문한 게 나왔고,
-어때?
-마이 시다. 아이고~
-딴 거 시키자
-아이다. 비타민씨 많이 섭취하고 좋지. (창 밖을 보시더니) 아이가~ 잎 올라온 거 보래이. 아직 쌀쌀한데도. 저 고양이들은 우째 저리 소리 없이 조용조용, 참 우아하게 걷는고 몰라
-나는 어릴 때부터 고양이가 그냥 싫었어. 아마도 변하는 눈이 무서웠나 봐. 그러다가 예전에 모로코에 머물 때 고양이 매력에 빠졌거든. 그 놈들이 기분 좋을 때 가르랑하는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 들으면 편안해지더라고. 근데 얼마 뒤에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간지럽고 난리가 났어
-아이고~ 고양이털 알레르긴갑네
-응. 그 뒤로 고양이는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지
-니가 어릴 때부터 체질이 까탈스러운 게 있었지
-엄마, 5월 말에 대체휴무를 연달아 잡았거든. 그때 여행 가자
-나야 좋지만 니가 무리하는 거 아이가?
-아이다. 나도 엄마랑 다니는 거 좋다
-어디 갈라고?
-멀리 가는 건 엄마가 힘드시니까, 일본?
-응. 비행기 오래 타마 힘들더라.
-요즘 일본 관련 책을 보는데 두 군데 생각 중이야. 교토와 근처 소도시, 또 하나는 지난번 갔던 후쿠오카 근처의 사가현에 일본 고대 유적지랑 무령왕 관련, 도자기 마을. 둘 다 엄마가 좋아할 듯해
-교토는 한국의 경주 같은 곳이라매?
-으음… 경주와 서울을 합친 게 더 가까울 듯해
-백제 무령왕 말이가?
-응. 무령왕 출생지가 일본이래
-백제왕인데 와?
-고구려 침공으로 백제가 수세에 몰렸을 때 무령왕 아버지가 임신 중인 왕비를 일본으로 도피시켰고, 그래서 일본에서 태어났대. 관련 유적지도 있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기재된 무령왕 부분이 다른데 당연히 삼국사기를 정설로 여겼다가,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지석으로 일본서기 내용이 맞는 게 확인됐고, 무령왕이 다시 한반도로 건너와서 백제 중흥기를 이끌었고, 일본에 선진 문물을 전했다, 그렇게 현재의 우리가 아는 것보다 당시의 한반도와 일본 간의 교류가 활발했다는 점을 늘어놓으려는데,
-아이고~ 산달 다돼서 배를 타고 일본까지 갔으마, 그 양반(왕비) 엄청 고생했겠다
아~ 그래, 이거였어! 엄마는 상대방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이해가 안 되면 재차 묻고, 무엇보다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툭 던진다. 이래서 엄마랑 대화가 즐겁다. 산달에 배를 타다니, 얼마나 고생했을지 생각지도 못했다. 더 늦기 전에,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엄마와 여행,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