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은 바람을 부른다

by 딜리버 리


한때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했던 적도 있었다. 죽으면 실컷 잔다 따위의 말도 안되는 말을 따라하면서 말이지. 안자고 대단한 거라도 했으면 말도 안한다. 그렇다고 휴일이라고, 피곤하다고 열 몇 시간씩 몰아서 자지는 않는다. 갱년기 증상이 있을땐 새벽에 종종 깨곤 했어도 평균 6~7시간 정도는 자는 듯 하고, 잠이 주는 만족감을 알아가는 중이다. 어쨌든 7시간 이상은 자자 싶어 밤 10시 알람을 맞춰놓고 보던 것(TV, 핸드폰)을 중단하고, 수면제(책) 복용하며 잠자기로 했다. 허나 인생이 계획과 결심대로 흘러갈 리가 있나? 특히, 휴무일 앞날은 더욱! 좋아하지 않는 장르가 애니메이션임에도 #푸른 눈의_사무라이 새벽 4시까지 보느라 보통은 6시 이전에 눈을 뜨는데 오늘 8시 넘어 일어났다. 얼마나 재밌기에? 끊기 힘든 재미 때문이 아니라 블루라이트 중독이다. 기억에도 남지 않는(영화 내용과 나이듦의 결합) 영화 보느라 아까운 수면 시간만 날렸다. 설혹 아무리 재밌는게 있어도 밤 12시엔 자자. 잠이 보약이다.


빨래 돌리고, 청소하고(진공청소기+스팀 물걸레질), 반려식물 물 주고, 라벤더 분갈이용 화분 주문했다. 어제 밤 퇴근길에 산 탑마트 치아바타 2개, 야채샐러드(양배추+양파+상추+올리브오일, 발사믹+꿀)에 커피로 아침 먹었다. 어영부영하다 어느덧 12시, 이러다 하루 종일 방콕 하겠다 싶어, 오도방 키랑 헬멧 챙겨서 집을 나섰다. 어젯밤 비 덕분인지 시계가 맑아서 오도방 타기 좋은 날씬데, 바람은 차고 거세게 분다. 어딜 갈까? 그래, 오늘은 동네 탐방하잣!


#천마산_조각공원 배송하다가 안내표지판을 몇 번 봤어도 갈 생각이 없던 곳이다. 벚꽃 잎이 눈 쌓이듯 내려앉는 비포장길을 달려 도착했다. 하~ 한국 공무원들의 공공시설과 문화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천마산 전망대와 모노레일 설치 공사하느라 산 정상부는 공사판인데, 공사에 걸리적대서였는지 별도 조치 없이 한쪽에 아무렇게나 조각품을 쌓아뒀다. 세금 들여 만든 다중이 이용하는 공원을, 그 곳에 있는 조각품을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 차라리 천마산_산산조각공원으로 개명해라.


#시약산 여기도 배송구역인데 정상부까지 임도로 갈 수 있는 듯했다. 숲체험시설 근처에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산불 감시원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단다. 걸어갈까? 잠깐 고민하는 사이 엄청 센 바람이 불어댄다. 산 중턱이 이 정도면 이런 날 산 정상부가 얼마나 추운데! 핑계는 이유를 만든다. 시약산으로 온 이유가 개발공사로 파헤쳐지지 않은 산을 보는 것도 있지만, 빵 재고가 없어서 #오성빵집 깜빠뉴 사러 온 게 우선이었다. 보는 것보다 먹는 것이 앞선다. 어제 탑마트에서 산 치아바타가 너무 맛없고 퍽퍽했던 것도 한몫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일요일, 월요일 휴무다. 에잇~


회사 이전하고 출퇴근길에 봤던 가게 간판에 큼직하게 1974를 써놓고 자신들의 오래됨을 자랑하는 빵집이 떠올랐다. #SPC 프랜차이즈빵집이야 어딜 가나 있지만 노동자의 피와 희생으로 만든 빵을 안먹겠다, 혼자 불매운동을 한 지가 몇 년째다. 동네 빵집 찾기가 어려운 시대에 5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는 건 맛이든 가격이든 간에 경쟁력과 내공이 있다는 말일테지. 호두 깜빠뉴(9천 원)와 공갈빵(2,500원) 샀다.


깜빠뉴는 처음엔 괜찮다 싶은데 먹을수록 간이 안 맞고 퍽퍽하다. 식감(겉바속촉), 내용물, 적절한 간 등을 고려했을 때 오성빵집이 입맛에 맞다. 공갈빵은 가격에 비해 양과 맛이 그렇다. 이 빵집 후기에 보니 단팥빵의 팥을 직접 끓여서 사용하고, 식빵이 일본 식빵(은 마트에서 파는 것도 너무 쫄깃해!)처럼 쫄깃하다는데, 다음에 먹어봐야겠다.


한국인의 음식(식당) 관련 뻔한 마케팅 포인트가 역사성, 수제, 엄마 손맛, 가정식 등이다. 그래서 우리 식당이 보다 더 오래된 걸 강조하려고 원조에 원조 같은 옥상옥을 내세우고, ‘수제’ 초코파이임에도 매일 전국에 계속 팔수 있고, 어느 집이나 엄마 손맛과 가정식이 맛있는데도 전국에 식당이 이렇게나 많아질 수가 있다. 하기사 서양도 홈메이드에 프리미엄을 붙이는 걸 보면 여기나 거기나 다들 뻔한 포인트를 믿나 보다. 내 입맛이 보잘 것 없는 역사를 가져서인지 가게가 오래됐다고 내 입맛에 맞는 건 아니더라.



하얗다 못해 눈부신

꽃잎이

이리저리 불어댄다.

꽃잎은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 알려준다.


여기저기 휩쓸리는걸,

바라보다, 눈물이 흐른다.


벚꽃 지는 봄날,

네가 떠난 봄날,

여전히 바람은 분다.


어쩌지 못할 일이어도

혹시나

마음에 준비하지만

결국 어쩌지 못했다.


이리저리 준비한, 그만큼,

여기저기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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