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비 게스트하우스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간단한 아침식사를 제공한다는 안내문을 봤었다. 1층으로 내려오다 식사 중인 흑인계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헬로?
-하이
형식적 인사 후에 식빵 4개를 토스트기에 넣고, 버터와 잼을 챙기고 커피를 따르는데 여성이 토스트기에 빵을 넣으려다 이미 들어있자 자리에 돌아가려기에,
-당신 먼저 먹어. 나는 또 하면 되니까
-아휴~ 고마워
안그래도 달랑 둘뿐인데 아무 말 없이 먹는 분위기가 어색하던 차에 작은 호의를 기회로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어?
-프랑스
-(불어로) 내 이름은 아치야
-(불어로) 오~ 불어
-(불어로) 아주 조금, 흉내만 내. 10여 년 전 파리에 2년 정도 살았어
-진짜? 반가워. 난 마다가스카르 옆 모리셔스 출신이야. 영국에 살다가 지금은 프랑스에 살아
-코스모폴리탄이네!
-아냐. 아버지는 프랑스계, 엄마는 영국계라 그래. 콤플렉스 한 인간이지. 넌 어디서 왔어?
-부산, 알아?
-어
-오토바이 타고 왔어
-밖에 있는 파란색?
-어. 한국은 처음이야?
-한국 온 지 12년이야
-12년?
-(황급히 손을 저으며) 노노노, 12일. 일본서 부산, 제주 둘러보고, 경주, 다음엔 서울
-대부분 서울부터 오는데 다르네
-일본 후쿠오카에 부산에서 배 타고 온 여행자를 만났는데, 괜찮다기에 배로 들어왔어
-오~ 일본이랑 부산 가깝지. 한국 다녀보니 어때?
-아주 유니크해. 부산은 무질서하고 왁자지껄한 기운이 좋았고, 제주는 판타스틱했고, 경주는 역사와 유적이 놀랍고, 고분이 경이로워
-오호~ 그랬구나. 남은 여행 잘해
-고마워, 너도
식사가 끝났고, 해브나이스데이를 나눴다. '어매이징', '판타스틱', '유니크'란 단어를 오랜만에 들었다. 여행을 표현하는데 최적화된 단어 아닐까 싶다. 매사 작은 것에 만족하라~, <여행> 3장 5절에 나오는 말이다.
여행은 낯선 어디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상이다. 낯섦은 익숙하지 않음을 전제로 하니 불편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계획대로 안 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그걸 탓해봐야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여행의 속성이 그렇다. 여행의 돌발변수의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시킨 게 패키지여행상품이다. 그만큼 여행의 본질인 낯섦과는 멀어진다. 여기는 너무 더워서 싫다, 추워서 짜증 나고, 빨리빨리 안 해서 답답하고, 이래저래 불편하고,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한국과 비교하며 여행지의 낯섦과 다름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불평을 늘어놓는 이들을 간혹 만난다. 익숙한 일상이 그렇게 좋으면 그냥 집에 있지 왜 왔냐 묻고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려고 여행 와서, 불만불평으로 아까운 돈과 시간을 써댄다.
여행자는 만나고 헤어지는데 익숙하고, 낯섦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이 가진 편견과 선입견으로 낯섦을 대하는 순간, 여행지는 한시라도 벗어나고픈 불편한 삶의 현장이 된다. 편견과 선입견이 작용하는 순간, 사람 사이의 관계도 헛헛해진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