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쿠팡플레이

by 딜리버 리

이틀 연속 휴무일을 자축하기 위한 먹거리를 사려고 마트에 들렀다. 저녁 8시 이후로 정육코너와 조리된 안주거리(치킨, 삼겹살, 훈제오리 등)를 할인하는데 이미 다 팔렸다. 에잇~ 무아스파탐 막걸리만 샀다. 냉장고에서 냉동 대패삼겹살+냉동 소시지+냉동 마늘+냉동 고추+냉동 치즈를 꺼내서 두반장과 굴소스를 뿌리고 프라이팬에 볶는다. 냉동 인간이 되려는 것도 아닌데 냉동식품만 너무 먹는 것 같아 콩나물과 계란을 추가했다. TV만 켜면 된다.


조직폭력배 간의 이권에 얽힌 가족(또는 친구)의 복수를 위해 홀로 적진으로 찾아간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뛰어난 싸움실력으로 일당백으로 설쳐대는 폭력물로 가득한 OTT가 지긋지긋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최대의 만족을 얻기 위해, 비용과 이익을 고려하는 게 합리적 소비인데, 재미없고 식상한 걸 보려고 내 돈을 쓰는 건 아니다 싶어 넷플릭스의 유료서비스를 끊었다.


폭력물을 소비자가 많이 찾는 건지, 시나리오 쓰기 편해선지, 제작단가가 낮은 건지 폭력물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틈만 나면 두드려 맞는 학교폭력의 피해자, 학부모의 영향력(돈과 권력)에 따른 부당한 간섭과 차별, 교사의 편파적인 편들기 등을 적당히 배치했지만 결국은 잘생기고 출중한 싸움실력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 설치는 건 마찬가지다. 1020 남자를 시청자층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영업전략인 지 1020에게 익숙한 학교로 폭력의 공간을 옮겼을 뿐이다. 지긋지긋함은 여전하다. 드라마 명가로 불리는 HBO 영상물(오호~ 종류와 숫자가 엄청나다)이 쿠팡플레이에 있어서 넷플릭스를 볼 이유가 더 없다.


새로 올라온 콘텐츠를 살피다가 대사빨이 좋아서 재밌게 봤던 <멜로는 체질> 감독(공동 감독이었네)이 연출한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영화가 있기에 주저 없이 눌렀다. 영화 초반부에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고, 주인공은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생활을 한다. 엄마가 죽었는데 어떤 반응도 안 보이는 주인공이라니? 이게 뭐지 싶은데, 이 부분만 빼면 영화 전개가 어색하진 않다. 실제 하는 예술단체를 연상시키는 청소년 무용단에서 주인공과 빌런 역할 간의 갈등과 화합, 주인공 주변 인물들의 보살핌과 알콩달콩 서사, 해피엔드로 끝나는 정통 청소년 성장드라마, 오랜만이다.


주인공이 이런저런 이유로 애용하는 약국에서 그동안 참았던 힘듦과 감정을 쏟아내며 엄청 울고 잠든다. 그걸 지켜본 약사가 주인공을 데리러 온 교사에게 티를 안내서 그렇지 그동안 힘들게 견디고 있었다며,

떠난 사람은 그날만 이별이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은
매일매일이 이별이다

류의 말을 한다.


불의의 사고를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상대방의 배신으로 느닷없이 이별을 당한 사람은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이별의 아픔은 과거의 사실에서 비롯되므로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사실’을 알고 싶다. 힘들었던 과거를 굳이 떠올릴 필요가 있냐, 빨리 잊어라는 건 혹시라도 자신의 잘못을 들추는 게 불편해서다. 아픔은 시간이 지난다고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괜찮은 척하는 거다. 현재는 과거의 축적이므로 현재를 제대로 살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 사실이 드러나는 게 두려워서 덮으려 할수록 현재는 도도리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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