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나무
01. 이즈하라의 대표적인 신사를 찾았는데 문 안쪽으로 접근할 수 없다. 문 앞에 붙은 안내문에 따르면 앞서 다녀간 누군가의 무례함 덕분에 발을 디딜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얼마나 몰상식한 짓을 벌였기에 이런 조치를 취했는지 모르지만 내 눈만 버릴게 분명해서 찾아보진 않았다. 자기 딴에는 애국심과 민족감정으로 울분에 찬 행동이었다고 포장하겠지만 그저 타인의 문화를 폄훼한 차별주의자의 난동이었을 뿐이다. 아마도 당신 주변에 있던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지인들은 용자라고 추켜세웠겠지, 유유상종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그 누구도 타인(과 그들의 문화, 생각)을 함부로 대하고 무례하게 굴 권리는 없다. 인간 세상에서 온갖 일이 벌어지는 걸 지켜보며 수백 년을 살아왔을 아름드리나무 밑에서 학교를 마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놀고 있다. 애들이 한가롭게 노는 모습을 본 게 얼마만인가 싶다. 평화롭다.
02. 대마도에 대단한 유물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 없지만 어딜 가나 박물관을 가려고 한다. 낯선 곳의 역사를 가장 편하고 집중적으로 접할 수 있기에. 가는 날이 장날, 마침 정기 휴일이다. 입구를 서성대다 히타카츠행 버스 탑승시각까진 시간이 남았는데 해안가는 새벽에 이미 돌아봤고, 어딜 갈까 하다가 반쇼인으로 갔다. 한때는 자신들의 힘과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을 대마도 권력자 집안의 무덤군이 지금은 가끔 찾는 관광객에게 300엔 입장료 받는 관광지가 되었다. 과거엔 화려하게 장식되었을 무덤 조형물은 보잘것 없어졌고, 당시엔 보잘것없었을 나무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 되었다. 나무가 300엔 값을 한다. 조용하다.
03. 하타카츠로 돌아와서 자전거를 빌리고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2023년 8월부터 오토바이 타면서 자전거는 몇 년째 접힌 채로 있는데 굳이 다른 나라까지 와서 자전거 타는 고생을 할 필요가 있을까 묻고, 나이 더 들면 하고 싶어도 못해 답했다. 그렇게 출발해서 산을 몇 개 넘었는지 모를 산길을 달리는 동안 오가는 차량도 몇 대 없다. 인공조림한 삼나무가 즐비하고 군데 군데 벌목장이 보인다. 쭉쭉 뻗은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어둑어둑한 도로를 달리다 보면 무서움도 살짝 들고, 이 길이 맞나? 아니면 어쩌나 싶지만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왔다. 중간중간 구글맵으로 위치 확인하며 2시간여 만에 도착했다. 앗! 은행나무 딱 한그루뿐이다. 한국에서 봤던 수백 년 된 은행나무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멋짐은 아예 없다. 설명문에 한 번은 벼락을 맞고, 한 번은 태풍으로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가는 큰 피해를 입었던 은행나무는 1,500년째 살아있다. 남에게 보이는 모양 따위! 살아있으면 된 거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할 뿐 보여주기 위해 살지 않는다. 자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