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열길 물 속을 알아가는 중

by 딜리버 리

20대 시절 좌골신경통이 있어 수영을 배웠는데 그 뒤로 두세 번 정도 배우다 말았다.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데 왜 관뒀을까 생각해 보면 수영 강습이 재미가 없어서였다. 자유형부터 접영까지 그룹별로 줄지어서 '경쟁'하듯 몰아붙이는 강습방식이 별로였다. 수영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나 싶은 현타가 들었다. 어쨌든 짝퉁이어도 자유형, 평형은 할 수 있으니 헤엄치고 놀 수는 있으니 됐다 싶어 수영 배우기를 관뒀다. 그리고 어디 여행을 가도 수영장처럼 헤엄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아 수영을 제대로 못하는 것에 대한 불편은 없었다.


작년 5월 즈음 직장 동료 소개로 프리다이빙에 입문했다. 예전에 필리핀에서 스노클링 하며 봤던 바닷속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는데 프리다이빙을 하면 자유롭게 헤엄치며 바닷속을 볼 수 있겠다 싶어서다. 첫 교육날, 시퍼런 물색을 드러낸 수심 6m 다이빙풀을 보고, 하이고~ 이래 깊은 데서 어째 하나 싶었다. 지금껏 봐왔던 수영장 물색과 달라서다. 내가 겪어왔던 것과 다른 공간에 처음 가게 되면 본능적으로 마음과 몸이 긴장한다. 물속에 고정된 안전난간에 서서 강사쌤 설명을 듣는데 마치 천길 낭떠러지에 서서 고소공포증을 겪듯 다리가 후덜 거리고, 나도 모르게 벽 쪽으로 바싹 붙어 걷고 있었다. 처음엔 귓속이 아파서 3m도 못 내려갔다. 너무 아팠다.


2회 차 교육은 밀양에 있는 12m 다이빙풀로 갔다. 어허~ 6m는 수영장 깊이로 느껴질 정도로 싯싯싯퍼렇다. 여기선 6m 정도 내려갔다가 귓속이 아파 올라왔다. 그렇게 몇 번을 시도해도 6m 이상은 내려가지 못했다. 그 뒤로 6m 잠수풀에서 자율연습을 계속했다. 이래서 경험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치를 일반화하고 한정하는 순간 경험은 편견이 되는 듯하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하는 누구처럼. 지금도 이퀄이 안돼서 코피는 흘리지만 서당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더니 6m는 대수롭지 않게 내려간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데, 물속이나 사람 속이나 실제로 겪기 전엔 모르긴 매한가지다


창문을 열었는데 포근한 기운이 넘어온다. 어제까지 꽁꽁 싸매고 다녔는데… 갑자기 이래도 되나? 어이가 없네. 날씨가 이래 좋으니 오토바이 타고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몇 페이지 남지 않은 <명랑한 유언>도 읽을 겸 버스+지하철을 탔다. 깊이만 깊을 뿐 대형 목욕탕보다 조금 큰 편인 다이빙풀은 저녁이나 주말에는 물 반 사람반인 데다 대부분의 다이버들이 롱핀을 사용 중이라 다른 사람과 이리저리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오늘은 강사 3명, 교육생 3명, 자율연습생 2명으로 총 8명뿐이라 여유롭다. 평일 오전의 행운이다. 사람이든 동식물이든 1개체당 생존을 위한 적정 면적이 있다는데 취미생활에도 적정 면적은 필요하다.


사놓고 안 쓰는 것도 아깝고, 한 번만 써더라도 언젠가는 쓸 거라서 지난번에 싸게 살 기회가 생겨-아이다 2 자격을 획득하는데 이리 시간이 걸리거라 예상치 못하고-덥석 산 다이빙슈트와 넥웨이트(800g)를 챙겨 왔다. 다이빙 슈트는 물속에서 이리저리 휘저으며 슈트 속에 물을 채워가며 몸을 넣어야 입을 수 있는 꽉 끼는 초강력 쫄쫄이다. 어찌어찌 팔을 끼웠는데 소매 끝이 접힌 채 팔을 제대로 뻗지 못하고 헤매고 있으니 옆에 있던 다른 강사분이 물을 채워가며 팔을 뻗는 법을 알려줘서 겨우겨우 입었다.


오리발 처음 착용했을 때보다 불편의 정도는 더 심한데 어쩌겠는가? 빨리 적응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여행자가 길을 탓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말이지. 오늘 버디는 수심 22m를 찍었던 선배 다이버인데 3년 정도 다이빙을 안 했다가 다시 시작해서 이퀄라이징부터 한단다. 쉬는 시간에 강사쌤이 다가오더니,

-두 분 다, 코피 나셔서… 실핏줄이 약하신가?

-(둘 다 어색 어색)

-이 분은 22m를 찍었다는데, 그럼 이퀄돼야…(당연한 거 아닌가?)

-몸이 까먹은 듯해요. (나를 보며) 이퀄 안되면 어디가 아파요?

-귓속요

-전 눈썹 위 이마 쪽이 망치로 때리듯 아파요

-엥? 거기가 왜?(강사를 쳐다보자)

-아마 부비동 위쪽 어디가 막힌 게 아닌가 싶어요.


레그퍼스트로 시작해서 헤드퍼스트, 덕다이빙을 하며 중간에 코피를 풀고, 다시 다이빙, 오늘도 이퀄은 됐다 안 됐다를 반복 중이다. 그러다가 강사쌤이 물구나무 자세로 물속에서 숨 참기 하는 모습을 보고, 헤드퍼스트 자세로 줄을 잡고 내려갈 때 이퀄해서 귓속이 안 아프면 내려가고, 또 이퀄하고 안 아프면 내려가고, 머물고, 그렇게 야금야금 내려가서 6m를 찍었다. 같은 방식으로 3번 연속했는데 귓속이 1도 안 아프다. 오호~ 이퀄이 되는 건가? 바로 덕다이빙을 시도했다. 아야얏~ 귓속에서 찡하고 통증이 왔다. 덕다이빙으로 내려갈 때도 헤드퍼스트처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서둘지 말고 릴랙스~


강사쌤한테 헤드퍼스트 3번 했는데 귓속이 안 아팠다고 하니까, 10m 정도는 발사바 호흡으로 가능한데 감정 컨트롤이 먼저라고 몸을 편하게, 릴랙스~ 몸에 힘들어가면 안 된다면서 다음번은 북항 마리나 가잔다. 영남권 최고 수심 다이빙풀(24m)이다. 6m 이퀄도 안되는데 10m를 할 수 있을까요 했더니 신기하게도 다른 장소에선 되는 분도 있어요 한다. 에라~ 모르겠다. 안되면 할 수 없지, 그렇다고 맨날 같은 데서 머물 순 없잖아. 20일로 예약했다. 낯선 여행지로 떠나기 전에 설레고 긴장되는 느낌을 좋아하는데, 지금이 그렇다.


그래도 다이빙을 흉내 낼 줄 안다고 그런지 24m를 봤는데도 6m에서 12m 봤을 때만큼 긴장되진 않는다. 몸풀기로 레그퍼스트로 10m까지 내려갔다 올라왔다. 강사쌤은 숨 참기 충분하고 발살바로 하면 되니까 몸에 힘주지 말고, 편하게 하란다. 나는 편하게 하는데 남들 보기엔 그렇지 않은가 보다.(나중에 영상을 보니 온몸에 힘이 들어가서 어찌나 뻣뻣한 지!) 두 번째부터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이퀄 될 때까지 머물며 천천히 내려갔더니 귓속 아픔도 거의 없고, 10m를 찍었다. 다음은 헤드퍼스트, 마찬가지로 여유를 가지고 하니 이퀄이 됐다. 헤드퍼스트로도 10m를 찍고, 마지막으로 덕다이빙이다. 귓속이 살짝 아린다. 6m 덕다이빙때처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강사쌤은 몸에 힘이 들어가서 계속 고개를 젖힌다며, 몸에 힘을 빼고 고개를 숙이란다. 촬영 영상을 보니 내려가고 올라올때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다. 덕다이빙까지 끝나고 강사쌤에게 여기서 이퀄이 더 잘된다니까 큰 물 체질인가면서 실내풀보다 바다에서 더 잘하는 사람도 있긴 하단다. 기분 좋은 건 6m에 비해 코피도 거의 흘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29일 AIDA2 시험 보기로 했는데 시저가 전쟁에서 이기고 했다는,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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