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대표음식 부산돼지국밥을 먹으러 왔는데
앞 테이블 남자가 시선에 들어온다.
눈앞에 놓인 국밥을 한 술 뜨고 그 남자를 한 번 쳐다보는데 한 손엔 휴대폰을 나머지 한 손엔 숟가락을 든
그 남자에게 국밥은 뒷전이다. 나는 국밥의 뜨거운
국물을 삼키며 그 남자로 빙의된다.
50대 후반으로 보이고 사업체를 운영하는지 바쁘다.
돼지국밥을 먹으면서도 누군가와 끊임없이 통화 중이다.
그는 세상 풍파를 적당히 맞아본 눈빛을 발산하는데
같은 남자로서 느끼는 직감이다.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무게 또는 직장이나 사업채를
이끌고 나아가야 하는 부담감 등이 눈빛에서
느껴진다면
그건 같은 시대를 사는 동정 어린 내 생각이고
상상일 뿐이다.
부산 돼지국밥이 40대 후반의 나와
50대 중반의 부산남자 사이에서 극명히 갈린다.
그에겐 뭐가 그리 바쁜지 모르지만 생존을 위한
단지 중요치 않은 한 끼일 뿐이고
나에겐 부산의 매력과 특색을 느끼고 음미하려던 차에
절묘하게 교차된 부산사내의 눈빛 사이에서 나는
내 삶을 투영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뜨거운 돼지국밥 국물을 목으로 삼키는 것이
흔하디 흔한 힘든 일상의 일부라면
부드러운 돼지비계살이 적당히 어우러져 국물이
베인 밥알이
몽글몽글 씹힐 때 나는 깊은 맛은 마치 가족들이 모두 편안히 자고 있는 듯한 포근하고 따뜻한 맛이다.
뜨거운 국물을 삼키는 것은 어렵지만
넘겨서 배속으로 들어갈 땐 시원하다.
이 시원함은 어릴 때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며 노인들이
외치던 이해되지 않던 시원함과 동일하다.
다시 부산돼지국밥 점심이 뒷전인 50대 부산사내의
마음으로 돌아온다.
각자의 시선은 온전히 우리의 생각을 기반으로 한
나의 편견에 불과할 수 있다. 세상을 본다는 것도
결국 경험된 축적 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도 결국 상대나 앞에 있는 대상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경험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나만 옳다는 게 될 테니까 자고로 모든 것이
다 상대적이다. 세상에 타협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산을 찾은 나에게 돼지국밥은 특별한 맛을 기억하기
위한 시간이라면 같은 날 나의 맞은편 시선에
들어온 50대 중반의 부산사내에게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은 한 끼 식사에 불과하다.
오늘 우연히 교차된 시선에서 나는 부산의 돼지국밥
맛을
내 삶의 깊은 맛으로 담아내려는 의도하지 않은
잡념 같은 이야기로 오버랩되며 오롯이 깊은 나만의 돼지국밥 맛으로 기억될 것이다.
#부산 #해운대 #돼지국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