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전복죽의 맛!

<50대 남자 셋 제주여행 선물 보따리>

남자 셋이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각 가정의 가장으로 50대의 가장 치열한 삶은 살고 있을 삶의 전쟁 중에 그것도 3박 4일이라는 자유가 주어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여행은 여행이 아닌 잠깐의 피난처라 명명하는 것이 맞겠다. 50대 가장의 치열한 삶의 전쟁으로부터 잠시 떨어진 피난처 말이다.


사실 이번 50대 남자 셋 여행은 시작은 일명 '조 선생' 덕분으로 성사됐다.

나에게는 덕분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분 입장에서는 일명 '번아웃'의 상태가 온 것이기 때문에 각자의 상황에서 표현은 다소 신중해야 한다. 어른답게 말이다.

조 선생이 50대 가장인 데다 4명의 늦둥이 아빠로 치열한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무리가 발생했고

지친 가운데 본인도 조금 심각한 것으로 판단해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쉼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부인의

적극적인 권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사실 여행 동반자로 조 선생이 행여 너무 삶에 무게가 버거워 탈선을 하거나 다른 길로 더 벗어나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인데 그럴 확률은 제로에 가깝고, 그 임무는 내가 자청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에게 필요한 것인지 내가 원하는 것인지 보다 솔직히 일단 제주도를 가는 게 목적이다.


암묵적으로 그 임무가 동의되기까지는 집사람 역할도 한몫했다.

집사람과 조 선생의 와이프는 매번 마트를 같이 다니며 이런저런 속 사정 이야기하는 절친으로 하루에 한두 번씩 장시간 통화까지 어찌 보면 가족보다 더 친밀한 사이를 맺고 있다. 더욱 그럴 법한 것은 두 사람 나이가 비슷하고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데다 아이들 나이대까지 비슷해 삶의 깊은 공감대가 찰떡 같이 맞기 때문인데 두 사람 대화 가운데 제주도 동행의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유가 길어졌는데 조 선생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그의 아내가 친히 남편에게 힘들면 잠시 쉬었다 오라는 적극적인 권유에 대한 동반자를 자청한 것이 성사되었다. 50대 가장의 남자들에게 과연 명분 있는 자유시간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그런 시간은 쉽지 않고 이런 상황이 왔을 때 핑계 삼아 딸려가고 싶은 게 불쌍한 우리 50대 남자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나만 그런 것이라고 반문한다면 토는 달지 않겠다.


조 선생과 나는 사실 와이프들끼리 먼저 알게 된 것이 아니고 남자들이 먼저 교회에서 집사들로 만나게 되었다. 조 선생 아니 조집사님을 안지 오래되었다. 조 선생은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강단과 혜안이 있는 사람이고 그것이 나는 신앙심 내지는 하나님이 주는 카리스마로 믿고 있다. 아직까지도 그렇다.


자세한 이야기는 패스하고 한 사람 더 동반하게 된 '이 선생'은 요즘 나와 같이 생활의 패턴을 이어가고 있는

절친인데 내가 며칠간 공백이 생긴다는 소식을 접하곤 자기도 동행을 하겠다고 하면서 50대 3명의 제주여행 판이 짜였다. 어찌 되었든 내가 끼어들어 판이 커진 것은 분명하고 졸지에 50대 초반, 중반, 후반 남자들의 동반 제주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 선생은 매일 새벽기도 후 운동과 사우나로 하루를 시작하는 멤버로 6개월째 함께 하고 있는 동반자이다.

지역에서 내놓라는 건축사인데, 내게 새벽을 여는 아침 루틴을 선물해 주신 분으로 덕분에 새로운 삶의 패턴이 열렸다. 사실 동네 선배님이기도 한데 50대에 막 들어서는 무렵 더욱 친밀하게 알게 된 사이로 사연이 길지만 이 정도로 넘어가겠다.


자 여기까지 정리하면 조 선생이 50대 가장으로 삶에 지쳐 잠시 쉬는 '힐링여행'에 동반자로 그 와이프 절친의 남편인 50대 새내기인 내가 따라가는 데는 사실 나는 제주에 있는 송가 친구를 볼 겸해서 여행의 동반자가 된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내가 요즘 같이 지내는 절친 50대 후반 이 선생까지 결국 정리하면 50대 남자 셋이 제주도로 여행을 가는데 적어도 나에게는 계산된 또 다른 50대 친구가 한 명 더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조금 복잡하기는 하다.


미리 언질 하자면 이 글은 50대 중년남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거나 반평생을 살아온 남자의 심정에 대한 회고적인 생각을 담으려는 것이 아니다.


새내기 50대인 나에게는 3년째 제주살이를 하고 있는 제주 현지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3년 전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어머니가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시면서

도피처인지 새로운 터전인지 모르지만 제주살이가 시작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송가인데 부쩍 개똥철학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명상과 독서 그리고 산책을 즐기며 나름 내 앞에서

개폼을 잡기로 유명하고 멋있는 척을 하곤 한다. 나는 이에 뒤질세라 책과 독서에 관심이 많고 나름 사색을 즐기는 편이라 내심 마음한구석에는 송가를 적잖게 무시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가벼움으로 멋을 치장하려는 것이 보이기 때문인데 이것은 가짜가 진짜를 모방할 수 없다는 나의 오만한 편견에 불과하다. 사실 이것은 50대 인생의 전환점에서 어쩌면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많이 닮은 친구의 모습이 거울처럼 다가오며 동질적인 모습을 밀어내려는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정확이 친구를 통해 나를 보는 것이며, 그 가벼움에서 탈피하려고 애쓰는 번데기 애벌레 같은 의지가 담긴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제주에 내려간 송가 친구는 한번 놀라 오라는 이야기를 계속해왔고 나도 언제 한번 꼭 내려가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의 여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메인 일상이 나를 놓아주지 않아 계속 생각만 미뤄 둔 상황가운데 결론적으로 이번 50대 남자 셋 제주여행이 이를 실행케 해 주었다. 송가와 나는 제법 이런저런 나름 삶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꾀 오랜 시간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이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고, 경쟁하듯 일부러 더 옥신각신하는 못난 절친이기도 하다. 서론이 길었는데 분명한 건 송가가 제주에 있었기 때문에 이번 제주여행의 동반을 자청한 것이다.


이번 남자들의 제주여행이 사실 엄청나게 재미나거나 흥분되는 상황을 우리 중에 누구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는 50대 나이에는 웬만한 경험들이 다 있고 '지천명'의 타이틀로 하늘의 뜻을 안다는 것은 삶의 많은 부분들을 경험했다는 것으로 이를 뒤집어 말하면 삶의 대부분의 일들로부터 무던해진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지 모른다.


그래 딱 맞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별다를 것 없는 무덤덤한 남자 세 명이 단지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다는 것 일뿐 특별할 거 없는 단지 일상에서 잠시 떨어진 여행이 되는 것이다. 그런 여행 속에 무엇이 담겨 있을까?


특별한 기대나 설렘임은 미지의 세계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관심과 상상들인데 그러기에는

제법 오랜 시간 세상의 톱니바퀴를 돌고 돌며 기름때가 많이 끼었다. 십 대나 이십 대의 그런 설렘과 흥분을 맛본 지가 오히려 언제인지 가물가물 하다. 오히려 그보단 안 좋은 사고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는 일로 놀라는 경우가 다반사가 되었다. 주변에 하나둘씩 연로하신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경우 아님 뜻밖에 건강검진 결과로 암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순간적으로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며 놀램과 슬픔을 나누는 양상으로 패턴이 바뀌는 세대를 맞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진짜 어른이 되어가며, 늘 기쁘고 좋은 것만이 좋은 게 아니고 우리가 인생을 살며 별로 좋지 안 타고 생각했던 것들을 좋아하고 품어내야 하는 새로운 때를 접하게 되는 나이라고 설명하면 어느 정도 맞을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연결된 조합이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의문반 걱정반이었다면 정작 시작된 여행은 별반 걱정과 다르게 순조로웠다. 가장 나이 많은 찐 50대 이 선생이 감기증세가 심해지면서 약을 복용하며 여행 내내 먹는 시간을 빼놓고는 주로 숙소와 차에서 잤다. 어쩌면 삶에 대한 회피를 맘껏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감기를 핑계로 우리들 사이에서 조차도 그렇게 세상에 지친 듯 그냥 쉬고 싶은 것일지 모른다. 가엽다.

그런데 이 가여운 마음의 이면이 직감된다. 50대라고 같은 50대가 아니다. 그 눌리는 삶의 무게가 다르다 내가 80kg를 지고 있으면 조 선생은 100kg 이 선생은 120kg를 지고 있는 것이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더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지느라고 때론 더 무심하거나 비겁해 질지도 모르겠고, 문득문득 삶에 무게를 내려놓고 심은 심각한 우울 감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모습이 아닌 다가 올 미래의 모습이며 이 선생은 단지 먼저 가고 있을 뿐이다. 이 순간 우연히 선생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1월 중순이 지난겨울의 한복판 날씨가 아무리 제주라고 한들 쌀쌀해서 설렁설렁 관광모드로 주로 렌터카를 타고 이동하면서 잠깐잠깐 이어지는 포토타임과 맛집 이렇게 제주여행 첫날이 아주 평범하게 마무리 됐다. 그렇게 첫날을 평범하게 마치고 이튿날이 계속되었는데 여행의 중간중간 집에 있는 와이프와 아이들의 안부를 묻는 전화와 각자 업무와 관련된 통화가 이어졌다. 마치 한 공간과 시간 안에서 잠깐씩 각자의 라이프사이클로 연결이 반복되는 듯했다.


각 공간이 주는 느낌과 생각은 각자 다 다른데 떼어 낼 수 없는 각자의 삶 속에서 이어진 인연의 관계를 간직한 채 제주도라는 특별한 공간 안에서 연결되는 감정과 생각들에 대해서 나는 잠시 깊이 빠져든다.


50년을 살아오며 또 두 아이의 아버지와 남편으로 내가 짊어지고 있는 삶에 무게 그리고 남은 인생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삶이 예전처럼 심각해지기보다는 좀 더 가벼워진 것 같다. 이 느낌은 사실 어차피 인생을 내가 아등바등해봐야 별 수 없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찌 되었든 제주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50대 남자들의 여행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려 한다.


여행이 마지막 밤을 남긴 저녁 나는 아내가 추천해 준 맛집을 가려고 전화를 하니 라스트 오더가 30분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전화로 주문을 하는데 밥으로 할 건지 죽으로 할 건지 묻는다. 뒤에서 50대 후반의 이 선생이 죽으로 하라고 단호한 결정을 던져준다. 나는 전화로 주문을 마치고 액셀을 밞아 속도를 올린다.


겨우 예약시간에 맞춰 식당에 도착하고 자리에 앉아 수저를 놓기 무섭게 음식이 나온다.

작은 솥뚜껑 솥과 함께 붉은 톤의 색깔이 고운 음식 이렇게 두 가지 메인이 나오는데 전복죽과 물회, 고등어구이 그리고 김치와 나물 한 가지가 전부다.


솥뚜껑 솥에 담긴 전복죽을 그릇 3개에 최대한 공평하게 담아 나누고 우리는 숟가락을 들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뜨거운 전복죽이 목으로 넘어가고 그 특유의 전복향과 내장이 어우러진 감칠맛이 입안 가득 퍼치며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는 문득 이런 생각에 빠져든다.


기본이 튼튼하면 다른 미사여구가 필요 없다! 갑자기 밥 먹다 말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메인 음식 전복죽이 너무 훌륭하게 맛있다 보니 다른 밑반찬이 필요 없고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을 달리 우리 모습에 비유하면 품어져 나오는 자태가 훌륭하면 이것저것 치장이 불필요해진다.

얼굴이 워낙 고와서 덕지덕지 메이크업이 오히려 아름다움을 해친다. 이렇게 음식을 표현하면 이해가 될까 모르겠지만 우리 음식도 맛을 내려고 이런저런 조미료를 첨가하는데 이 맛은 MSG 조미료 따위로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맛이다.


우리 인생도 그렇게 화려한 치장이나 꾸미려 들 필요가 없다. 진정한 프로는 소리 높여 프로라 외치지 않는 법! 우리 마음에서 비롯된 진정한 멋과 향기로 품어내는 모습과 태도가 상대를 감동시키고 그 어떤 화려한 언변과 옷발로 드러낼 수 없는 품위와 카리스마를 지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묵묵히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삶을 진솔하게 살아내는 우리 50대 남자들이여 더 무엇이 필요할까

그냥 그 시간을 있는 그대로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내는 것! 그것은 어떤 것으로 치장하거나

꾸밀 수 없는 진정한 오리지널 그 자체이니 스스로 푸념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당당히 그렇게 계속 걸어가자!


이번 50대 남자 셋 제주여행 마지막 저녁식사 '전복죽' 맛을 통해 깨닫게 된 삶의 지혜와 통찰이다.


그렇게 계획되지 않은 여행 동기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향해 우리는 뜻밖에 선물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러한 인생 여정가운데 오롯이 자기의 역할을 감당하는 아내와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도 변함없이 감사하게 다가올 따름이다.


새내기 50대 그리고 50대 중반, 곧 60대를 바라보는 후반의 50대 각자의 삶의 무게가 다르지만 반평생을 살아낸 이제 전문가로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이 제법 공통적인 공감대로 많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우린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다. 세월이 낳은 노련함 결코 시간을 통과하지 않고는 체득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의 산물이다. 이것이 50대가 갖는 무게의 값이다.


우리끼리 50대를 인정해 주는 것. 말로다 설명하지 않아도 어림되는 서로의 상황과 처지를 그냥 동시대를 살고 있는 50대 가장 남자의 감성과 이성으로 어림되는 것들을 그저 그렇게 이해해 주는 것이다.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이기 때문에 암묵적 '동병상련'의 의미가 이럴 때 통한다.


사람의 관계를 위해서는 적어도 희생과 공을 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도 관심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은 가지고 있는 물질, 권력 또는 매력이 있기 때문 일 테지만 비로소 50대가 되어보면 알게 되는 우리들만의 공감대가 존재하고 그것을 서로 인정해 주는 여행이 이번 제주여행의 참된 맛이다.


더 바랄 것이 없고 더 좋을 이유도 없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맙다! 나의 50대 그리고 지금까지 잘 살아와 주었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다시 한번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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