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이 전하는 민주주의를 지배하는 자 VS 지배받는 자!
선거를 통해 선출된 위정자들 즉 국회의원들은 권력이 불리하게 남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탁받게 됩니다. 선거로 세워진 이 지배자의 권력과 지위는 시한을 두고 있지만 정치체제가 확립되면 정부의 권력은 국민의 권력이 집중된 형태가 됩니다. 이것이 민주적이라고 불리는 정치권력 체제의 시작입니다.
과연, 민주적인 투표로 주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우리 개인은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존 스튜어트 밀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다수에 의한 전제'의 횡행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국회의원과 그 권력을 행사당하는 국민은 실제로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로 분리되고 민주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 모든 사람의 의지가 반영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수에 의한 전제'에 대해 핵심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압도적인 다수자 그들의 의지가 사회 정치에 반영되는 원리, 그 다수자가 자신들의 의견이나 생각의 확대를 추구함으로써 다수자가 아닌 나머지 사람들의 의견을 압박하기도 하는 것이 바로 '다수자에 의한 전제' 입니다.
이는 다수자를 위한 법이나 제도만 만들어지며 사회가 관여하지 말아야 할 일, 특히 개인의 사상이나 생활을 간섭하거나 무거운 압박을 가할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이것은 진영 논리와 상관없이 어느 쪽으로든 작용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 행해지는 습관이나 상식, 규칙은 다수자인 그들에게 너무나도 자명하고 올바른 것으로 인식되며, 그들은 자신들의 이기심을 정상적인 이성으로 간주하고, 또 그 이기심을 토대로 사회의 윤리를 형성하려 합니다.
결국 법조차도 다수자를 중심으로 한 여론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 법에 편향성이 있다는 것은 다수자의 호불호나 증오를 토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강한 것은 법보다 다수자에 의한 '여론'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다수자의 오만한 사회 자체로 둔갑하게 될 경우 초래하게 되는 간섭은 형벌보다 훨씬 깊게 개개인의 생활을 파고들어 영혼까지 간섭하며 거기서 도망칠 수 없게 한다고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삶의 방식에 대한 강력한 침식은 종종 전제나 압정이 휘두르는 폭력 이상의 힘을 행사하기도 한다고 경종의 메아리가 오늘 마음 깊이 울립니다.
국민들이 '다수'라는 편향에 틀에 갇히는 순간 권력을 가진 자들은 결국 더욱 곤고하게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는 방식으로 모든 시스템을 작동하려 할 것 입니다. 다수의 여론이 곧 정의와 공정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권력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개인의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냉철한 지혜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동 방식으로 권력이 독점적이고 반복적으로 유지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