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낯선 공문 하나가 내게 배부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었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도 한가득이라 잠시 멈칫했다.
보통 같으면 그냥 내가 처리하고 말았겠지만,
이번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정말 내 업무가 맞나?”
업무 분장표에도 없고, 인수인계도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담당자에게 물어보았다.
“이게 제 업무가 맞을까요?
업무 배정표에 없는 내용이고, 인수인계도 받지 못해서 여쭈어요.”
“아, 선생님 그건 제 업무였네요. 죄송해요.”
다행히 담당자는 흔쾌히 업무를 넘겨받았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일들은 그리 명확하지 않다.
일이라는 건,
애매하게 걸쳐 있는 것들이 더 많다.
같이 일하던 동기가
내게 종이 뭉치를 슬쩍 던진 적이 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때 그 동기가 웃으며 말했다.
“거봐, 그러면 안 돼.
너한테 날아왔다고 받으면 그게 다 네 꺼가 되는 거야.”
업무든 일이든,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책임지는 세상에서
내 것이 아니면 애초에 떨어지게 두라는 얘기였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에
되도록 갈등을 피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떨어지게 두는 것’이 어쩐지 불편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오랜만에 업무에 선을 그어보았다.
이런 일은 집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할 일들이 생기고,
어느 순간 ‘내가 다 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스친다.
어떤 일은 남편이,
어떤 일은 아이들이,
그리고 또 어떤 일은 내가 맡을 수 있는데
나는 왜 자꾸 모든 걸 ‘받아’ 하고 있었을까.
그렇게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지치고
결국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아진다.
마치 머리와 몸이 동시에 멈춘 듯한 상태.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가정 안에서의 ‘업무 선 긋기’다.
예를 들면,
분리수거와 아침 등원 준비는 남편이
아이들 공부와 빨래, 설거지, 청소는 내가
어지러진 장난감 정리는 아이들이
이렇게 나눠보니,
숨 쉴 틈 하나가 생겼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업무의 선긋기’는 꼭 필요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걸 치사하게 따져?”
“그냥 좀 더 하면 되지.”
“정 없는 사람이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하는 것,
그게 내가 사는 방법이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선을 그어야
내 자리도,
내 일도,
그리고 나 자신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