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아이들 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할 때였다.
두 아이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 여자는 크면 엄마가 되는 거야."
"아니? 여자라고 꼭 엄마가 될 필요는 없어.
난 어른이 되어도 엄마는 안 될 거야."
"아니야아~ 엄마가 되는 거야. 난 엄마가 될 거야! 엄마도 엄마가 됐잖아!"
둘의 대화가 웃기기도 하고,
첫째가 엄마가 안 되고 싶은 이유가 궁금해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엄마가 왜 안 되고 싶은데?"
"엄마가 힘들어 보여서…"
순간 손이 멈췄다.
"엄마가 힘들어 보였어?"
"응. 엄마는 우리 밥도 해주고,
학교나 유치원 가는 것도 챙겨주고,
학원에 데리러 오거나 데려다 주기도 하고… 청소도 설거지도 하잖아."
"아빠도 일하고 와서 너희랑 놀아주는 거 쉽지 않아."
"그래도 아빠는 놀아주는 것뿐이잖아. 난 엄마가 더 힘들어 보여. 난 어른이 되면 차라리 아빠가 되고 싶어."
아빠가 되고 싶다.
이 말이 가슴 어딘가에 조용히 박혔다.
"물론 엄마가 힘들 때도 있긴 하지만, 행복할 때가 훨씬 많아."
"아냐, 난 그래도 엄마가 힘들어 보여. 난 엄마는 안 될 거야."
"으이구~ 엄마 힘들어 보이면 저기 너희가 노느라 어지른 장난감이나 좀 치워줄래?"
결국 잔소리로 끝난 대화였지만
그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엄마 힘든 걸 알아주다니 역시 우리 딸.
그런데… 내가 너무 힘들다, 힘들다 표현했나?
솔직히 힘들긴 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닌데.
생각해 보니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하기도 했고,
말보다 그런 표정을 더 많이 지은 것도 같았다.
그런데 문득 교사인 내가
교실에서 늘 하는 말이 떠올랐다.
"느끼는 걸 표현할 수 있어야 해."
아이들에게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집에서 내가 힘들다고 표현한 게 잘못된 걸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 딸이
엄마의 감정을 저렇게 세심하게 읽어냈다는 게 교사로서도 신기하고 대견했다.
어휴… 그런데 그게 우리 딸을 엄마가 안 되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할 정도였나?
생각을 하다 하다 나중에 커서
"결혼도 엄마 때문에 안 하는 거야!"
하고 원망을 들을 날을 상상하는 데까지 갔다.
아우… 너무 멀리 갔다. 정신 차려야지. ㅋㅋ
그래도 딸은 결국 엄마 편이라더니
내 편이 둘이나 있다.
갑자기 마음이 든든해지며
남편에게 괜히 우쭐한 마음까지 든다.
이 양반아, 늙어서 나한테 잘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