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되었다. 방학에는 읽어야 하는 책이 딱히 없다. 지회 모임도 강사 모임도 휴식이다. 그래서 제안 온 말놀이를 가벼운 마음으로 흔쾌히 하기로 했다. 하지만 강의든, 수업이든, 책읽어주기든 하기 전에는 의기 충만하지만 막상 시간이 다가오면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싶다. 그 시간에 하고 싶은 다른 일들이 마구 떠오르며 게을러진다. 오늘도 그랬다. '내가 이걸 또 한다고 했구나. 하고 나면 분명 진이 다 빠질텐데, 이걸 또 한다고 했구나. 아 춥다. 아 멀다.'
이름을 먼저 알고 싶다. "얘들아"로 뭉뚱그려가 아니라 "누구야" 로 한 명 한 명 불러 주고 싶다. 그래서 항상 첫 시간은 콩받아라로 시작한다. 콩을 주고 받으며 이름을 외우는 것이다.
콩콩콩콩
콩콩콩콩
콩받아라 콩받아라
니콩내콩 콩받아라
00아 00아 콩받아라
니콩내콩 콩받아라
콩받았다 콩받았다
누구 누구 콩받았다
말놀이를 끝말잇기 같은 거? 라고 했던 아이도 콩받아라 놀이에 '이거 뭐야?' 라는 눈빛으로 쳐다 보기만 한다. 그렇지 않아도 마스크로 꼭꼭 숨겨져 있는 입이 떼어질 줄 모른다.
"콩 말놀이 같이 해보자!
콩콩콩콩 콩콩콩콩"
책상도 막 두들기며 말해 보라고 여러 번 내가 먼저 반복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게 뭐 하는 건가, 이걸 왜 해야 하나' 라는 표정이다. 맞다. 사실 도서관 프로그램 중 '말놀이' 시간에 처음 와서 이걸 왜 해야 하나라는 생각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왜 말놀이를 해야 하는가, 왜 이걸 외워야 하는가. 처음 보는 아이들, 선생님 앞에서 왜 주저리 주저리 읊고 있어야 하나. 재미도 없고(아직 모르겠고) 잘 외워지지도 않는 이걸 말이다.
그러니 말놀이 첫 날은 내가 계속 반복하는 시간, 원맨쇼의 시간이다. 같은 것을 계속 반복만 하면 재미없으니 리듬 강약을 주며 요렇게도 바꿨다 저렇게도 바꿨다 목청이 터져라 외친다. 마음 속으로 '얘들아 정말 안 어려워! 그리고 크게 말해도 괜찮아! 자유롭게 이야기해도 괜찮아!' 빌다시피 하며 반복한다.
하지만 비록 간단하긴 해도 외우려면 먼저 집중해 들어야 한다. 그리고 입으로 소리 내서 말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느새 이 두 가지 다 익숙하지 않게 된 듯 하다. 듣고 말하기보다 읽고 보고 조용히 하기가 더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선생님이라는 사람 앞에서는 더군다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너와 내가 익숙해질 시간, 공간과도 친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오늘은 좀 천천히 가자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아이들은 주로 멀뚱멀뚱 저 사람은 뭐하는 거지? 왜 저걸 하고 있지?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뭐 조금씩 따라 해줬다가 하기 싫으면 엎드리기도 했다가 한다. 그래도 어찌 어찌 한 명 씩 돌아가며 서로 서로 콩을 주고 받으며 두 바퀴를 돌았다. 그러다 보니 이름이 다 외워졌다. 나는 너무 기뻐 이름을 막 맞춰 본다. 이게 그렇게 기쁠 일인가? 아이들은 또 신기하게 바라본다. 그러더니 표정과 자세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이제부터 나는 너희들이 다 왔나 셀 때 이렇게 세어 보려고!
한 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오징어
육개장
칠게(어떤 아이가 칠면조)
팔다리
구들장(또 어떤 아이가 구구단)
쨍그랑
난 열은 몰라요 라고 구구단을 말한 아이가 말한다.
괜찮아.
쨍그랑!
나는 쨍그랑! 크게 외치면 뭔가 통쾌하고 시원하더라. 너네도 한 번 해봐 큰 소리로 "쨍그랑"
어떤 아이는 잔인하다고 한다.
어떤 아이는 무섭다고 한다.
누구도 큰 소리로 '쨍그랑' 해보지 않는다. 해보면 좋을 텐데!
이야기와 말이 가진 힘으로 내 안의 어떤 감정을 풀어내고 해소하면 어떤 힘든 감정이 마음에 하나 둘 쌓여만 가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이야기 안에서는, 말 안에서는 좀 그래도 되는데. 이야기의 잔인함을 현실의 잔인함으로 그대로 가져오지 않아도 되는데. 이야기가 주는 환상 세계에 실컷 충분히 마음껏 머물러도 좋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
별 넷 나 넷
별 다섯 나 다섯
별 여섯 나 여섯
별 일곱 나 일곱
별 여덟 나 여덟
별 아홉 나 아홉
별 열 나 열
다 셌다.
이건 또 뭔가, 왜 내가 다섯이고 열이 되나. 도플갱어인가? 왜 내가 이렇게 많은가? 별 세는 말놀이를 하면 아이들이 잊지도 않고 넘어가지도 않고 꼭 하는 말이다.
"하늘에 있는 별을 하나씩 따는 거야 그리고 나와 함께 세는 거지."
하며 나는 천연덕스럽게 천장 위에 별이 있는 것처럼 별을 손으로 똑 떼고 '별 하나' 가슴에 손을 얹고 '나 하나' 별 을 또 떼어 '별 둘' 가슴에 손을 대며 '나 둘' 이렇게 열까지 천천히 센다. '아, 1부터 열까지는 초등학교 전에 다 아는 거라구요'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이렇게 별과 나를 세어 가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과 내가 직접 입으로 말하는 것은 천지 차이임을 안다. 그리고 거꾸로 세어 보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라는 것도. 아이들은 이쯤 되면 조금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요것봐라, 요게 잘 안되네.' 하며.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 아니, 해주고 싶었다기 보다는 그냥 나왔다. 이런 말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계획한 것도 아니었다.
"너네 왜 별과 나를 세는 줄 알아? 그건 너희들이, 나라는 존재가 하늘의 별처럼 반짝 반짝 빛나고 소중하기 때문이야. 아름답기 때문이야. 그래서 별과 나를 같이 세는 거야."
아, 이 오글거리는 멘트는 무엇이지?우리 아이들에게도 해보지 않은 말이다. 굉장히 어색하고 낯설다. 그래서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여유있게 말하지 못하고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리듯 말해 버리고 말았다. 나도 깜짝 놀랐다. 그런데 한 아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네’ 라는 표정인 거 같다. 아, 아닌가? 잘 모르겠다. 이로써 오늘 말놀이 끝!
놀란 눈으로 쳐다 보던 친구는 ‘아침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나간다. 선생님이 붙긴 했지만, 그래도 나를 아침으로 불러달라는 이야기를 기억했다. 좋다. 그리고 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밖에 나오니 할머니와 화장실을 들렀다 막 가려는 다른 아이와 마주쳤다. ‘안녕’ 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다음 주 목요일에 뵈어요.’ 하고 말한다. 예스! 다음 주 목요일에 또 오고 싶다는 이야기구나. 됐네, 됐어!
아이들과 1시간, 특히 첫 날은 쉬지 않고 신나게, 재미있게 내가 흥을 돋아야 해서 많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한 마법같은 일이 일어났다. 왜 첫 날 항상 '별 하나 나 하나' 세는 말놀이를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과 숫자 공부를 하려는 것도 아닌데 꼭 별과 나를 천천히 열까지 세는 말놀이를 해왔다. 습관이기도 하고, 그냥 숫자와 별이 친숙하니 말놀이에 쉽게 다가가지 않을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면 저 말을 해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다 보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걸까? 말이 내게, 아이들이 내게 주문을 건 듯 했다. 말과 아이들이 함께 부린 마법 같았다. 돌아 오는 길,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기하고 오묘한 느낌이 어떤 기쁨 같은 것이 조금씩 차오르며 마음에 번져 갔다. 집에 와서도 배시시 웃음이 났다.
아, 힘들지만
아, 이래서 또 아이들을 만난다.
하나 하면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서 잘잘잘
둘 하면 두부 장수 종을 친다고 잘잘잘
이억배 그림책 <잘잘잘 123>을 마지막에 읽을 때 그래도 익숙해진 아이들이 입을 조금 열어 노래를 같이 불러 줬다.
잘잘잘~~
잘잘잘~~
잘잘잘~~
* 마포성메작은도서관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1시간 동안 1~2학년과 함께 하는 "께롱께롱 말놀이"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