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지 않는다.
하늘의 별도 만났고 달도 만났고, 눈 이야기도 나눴으니 비와 해를 부를 차례인데, 비가 내리지 않는다.
"오네 오네 비가 오네 우룩주룩 비가 오네"를 부르고
"해야 해야 나오너라 김치국에 밥말아먹고 장구치고 나오너라"
해를 소리쳐 불러야 하는데 비가 안 온다.
아쉽다. 아쉬워.
날씨와 상관없이 말놀이는 말놀이대로 부르면 된다. 하지만 예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불러 전해진 말놀이는 아이들의 생활,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비가 오면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비노래를 불렀고, 해야 해야 빨리 나와라 그래야 친구들과 또 신나게 뛰어놀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해노래를 불렀다. 일상의 간절한 바람, 놀이가 말과 연결되어 하나의 노래가 되고 아이들은 목청껏 부른 것이다. 그러니 비가 오지 않는데 비노래를 부르고 해야 나오라고 해를 부르는 것은 조금 신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쥐를 만나기로 했다.
쥐야 쥐야 니 어데 잤노
부뚜막에 잤다
뭐 덮고 잤노
행주덮고 잤다
뭐 비고 잤노
주걱비고 잤다
뭐가 깨무드노
개미가 깨물더라
(무슨 피가 났나
빨간 피가 났다
어찌 어찌 울었노
으앙으앙 울었다)
*밑에 괄호 부분처럼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이어 붙일 수 있다.
옛날 부엌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부뚜막에서 행주를 덮고 주걱 베고 한 잠 잘 잔 쥐가 아침이 되어 쪼르륵 마당으로 나오는 걸 보며 말을 거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는 조그만 생쥐가 부뚜막에서 저렇게 자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봐 귀엽지 않니? 하며 여러 번 반복해 불러 본다. 아이들은 사투리가 낯설면서도 재미있는지 입을 모아 잘 따라 부른다. 쥐가 귀엽게 느껴지는지는 잘 모르겠고. 하하
여러 번 부르고 난 후 한 명씩 메기고 받아 본다.
oo야 oo야 니 어데 잤노
0000서 잤다
뭐 덮고 잤노
000 덮고 잤다
뭐 비고 잤고
000 베고 잤다
뭐가 깨무드노
00가 깨물더라
무슨 피가 났나
00피가 났다.
부잣집에서, 의자에서, 아빠 콧수염에서, 소파에서 잤다는 아이들은 오빠 발차기 때문에 빨간피가 났다고도 하고 언니가 머리로 박치기했다고도 한다. 바퀴벌레, 집게벌레, 작은 공룡 콤푸소그나투스(한참을 물어 철자를 알아내서 적어 왔다. 찾아 보니 몸길이가 61cm밖에 안되는 정말 작은 공룡이다. 신통방통 신기해라)가 물었다는 아이 제각각이다. 피도 노란피, 초록피, 파란피가 나기도 한다. 물론 그냥 침대에서 이불 덮고 베개 베고 잤고 아무것도 안깨물었다고 얌전히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다.
한참을 주고 받으며 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훅 지나간다. 아이들이 신나고 좀 더 큰 목소리로 말놀이를 맘껏 불렀으면 좋겠어서 칠판에 쥐야 쥐야 말놀이를 적어 봤다. 외워서 하나 하나 말하려고 할 때보다 적힌 것을 보고 읽으니 확실히 더 쉽게 큰 목소리로 잘 부른다. 그래, 그렇게 맘껏 소리 질러 이야기해봐! 그래도 돼! 여기서는! 그리고 마음대로 바꿔 불러도 돼! 마음 속으로 나도 외쳐본다.
말놀이는 배운대로 외워서 따라 부르는 것이 끝이 아니다. 그렇게만 하면 이건 기억력 테스트 또는 하나의 공부가 아니고 뭐겠는지. 말놀이는 학습이 아니고 놀이다. 그것도 아이들 세상, 일상, 삶과 연결된 즐거운 놀이다. 그런데 즐거움을 느끼려면 입으로 직접 불러야 하고 더 재미있어 지려면 마음대로 요리 조리 변주를 부려 봐야 한다. 입으로 불러야 하고 생각도 해야 하는, 귀찮아가 조금씩 몸에 배어가는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놀이다. 그리고 재미를 느끼려면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시간도 필요한, 기다림이 필요한 놀이다.
어찌 보면 옛날에는 저절로 흘러 나온 놀이였는데 오늘날에는 이렇게 배워서 익히고 즐겨야 하는 놀이가 된 듯해 조금 씁쓸하다. 하지만 뭐든 시작은 있으니까... 현대는 기다림과 생각을 해야 하는 말놀이보다 아이들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훨씬 재미있는 것 천지니 이렇게라도 한 번 만나보는 기회는 소중하다 생각하기로 한다. 아이들도 요런 것도 있네, 좀 재미있네 라고, 조금 더디더라도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 읽은 그림책 <흰 쥐 이야기> 장철문 글, 윤미숙 그림, 비룡소
* 마포성메작은도서관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1시간 동안 1~2학년과 함께 하는 '께롱께롱 말놀이'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