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세상의 많고 많은 파랑』
색으로 기분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느낌을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색은 사물이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하는 빛의 색을 우리가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보는 색은 그 사물의 색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흡수된 것이 아니라 반사된 것이니까요. 24색 크레파스처럼 몇 가지 대표 색으로 색을 표현하는 도구들을 만들지만 그것도 48색, 56색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다양합니다. 누르스름한, 조금 연한 등 이름을 얻지 못한 색들도 많고요. 여기 색을 조금 더 들여다보게 하는 그림책들이 있습니다.
원서로는 제목이 그냥 『GREEN』, 『BLUE』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초록들’이라고 번역했고 하나는 그냥 ‘파랑’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번역자입니다. 거기에 ‘세상의 많고 많은’ 이라는 문구가 붙었습니다. 이미 제목에서 다양한 초록색이 소개되고 있을 것이라 짐작을 하게 됩니다.
첫 책은 2012년 다음 책은 2018년에 나왔습니다. 6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첫 책에는 여러 초록이 나옵니다. 원서에는 ‘See Green’ 인데 한국어판 책은 ‘바다 초록’이 아니라 ‘바닷속 깊푸른 초록’으로 되어 있습니다. ‘Lime Green’도 라임 초록이 아닌 ‘라임은 싱그런 초록’으로 나옵니다. ‘깊푸른’, ‘싱그런’ 이라는 형용사가 붙었습니다. 그냥 라임 초록, 바다 초록, 나무 초록 그랬다면 너무 심심했을까요?
하지만 그림책에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에서 초록은 모두 다른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알맞은 형용사를 보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게 했다면 어땠을까요? 라임 초록은 싱그럽지 않고 상큼할 수도 있을테니까요.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 에서는 다양한 초록색을 나열해 보여주는데 그친 느낌입니다. 그런데 6년 뒤에 나온 『세상의 많고 많은 파랑』에서 파랑은 조금 다릅니다. 개와 소년의 우정 이야기 속에 파랑이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파랑들이 아니고 파랑인 걸까요?
개와 소년이 함께 보낸 날, 시간은 다양한 파랑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보들보들 아기 파랑’ ‘팔랑팔랑 아기파랑’ 이렇게만 명시되며 그림으로 이야기가 풀어집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파랑을 중심으로 혹은 파랑을 통해 둘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파랑은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슬픕니다.
때로는 설레고 때로는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파랑이 있습니다. 시각적이라기보다는 좀 더 심리적입니다. 파랑에서는 색이 담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과 느낌까지도 이야기로 묶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색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더 나아가 색을 좀 더 마음으로 느끼게 해 줍니다.
사실, 이 책을 보며 번역에 눈이 먼저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림책은 그림과 이야기가 같이 있는 책인데 많은 부분 이야기에 먼저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이 책은 그림과 색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좋았습니다. 특정 이름으로 명명되는 색도 다른 느낌으로, 다른 색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번역 또한 그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 좋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안 좋기도 했습니다.
너는 무슨 색을 좋아하니? 묻곤 합니다. 나는 왜 그 색을 좋아할까요? 정확히 어떨 때, 어떤 느낌의 그 색을 좋아하는 걸까요? 나의 일상과 삶도 한 가지 색이라도 다양한 느낌과 톤의 색으로 물들이고 그려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 책은 보여줍니다.
당신의 오늘은 어떤 색인가요? 그 색은 어떻게 서서히 다른 톤으로 변해갔나요? 그래서 당신의 한 달은 어떤 색으로 물들었나요? 이야기와 그림으로 색의 섬세한 감각을 일깨우는 것, 그림책이 할 수 있는 소중한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 하나의 그림
이렇게 다양한 파랑이 있다.
파랑은 짙어지면 어둠이 된다.
파란 하늘은 희망이기도 하다.
파랑은 우울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슬픈 파랑
앞의 이야기를 알아야 왜 슬픈 파랑인지 알 수 있다.
글과 완벽하게 조응을 이루는 그림
눈으로 보이는 파랑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파랑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