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날마다 걔가 정말 놀라운 뭔가를 하더군요"
Gifted라는 제목을 다른 해석으로 받아들이게 된 명대사였다. 모든 장면을 명장면으로, 모든 대화를 명대사로 만든 영화, 어메이징 메리다.
일곱 살짜리 소녀, 메리는 수학 천재였던 엄마, 다이앤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다이앤은 오빠 프랭크에게 한 살배기 아이를 맡기고는 자살을 선택하며 천재적 삶의 불행한 면을 보여준다. 영화는 초반부터 천재적 삶의 불행함을 극명하게 다룬다. 메리가 바닷가에서 뛰어놀고, 외눈 고양이 프레드를 주워서 키우고, 옆집의 로베르타 아주머니와 절친으로 지내는 모습들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는 것 역시 연구원들과 지내는 수학 영재의 삶과 매우 대조적으로 나타낸다.
프랭크가 말하는 다이앤의 죽기 전 부탁은 '메리를 평범한 아이로 키워달라는 것'이었다. 특별했던 자신의 삶은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었다. 수학계의 저명인사인 그들의 어머니, 에블린은 다이앤을 평범한 길로 걷게 두지 않았다. 십 대의 첫사랑조차도 인정하지 않았고, 급기야는 스키장으로 여행 간 것도 납치당했다고 신고하기에 이른다.
반면, 메리를 맡아 키우는 프랭크는 철학 교수직을 물러나면서까지 메리가 뛰어놀 수 있는 환경으로 이사한다. 어머니의 교육방침은 여동생을 자살로 몰아넣었고, 메리마저 여동생의 전철을 밟을까 노심초사한다. 메리가 스스로 공부에 열중하는 것조차도 잠시 중단시키고 날씨가 좋으니 산책하자며 안고 나가버린다.
이미 많은 수학 이론을 섭렵한 메리는 난제를 풀어가는 것에도 흥미를 느끼고, 삼촌과 천진난만하게 놀면서도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간다. 메리가 두려운 것은 버림받는 것뿐이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기에 미움받을 것이 두렵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아파서 두렵다.
"엄마는 내가 그 학교에 가길 바랐을까?"
"그건 모르지만, 너한테 친구가 생기길 바랐을 거야."
"바보 친구?"
"또 네가 남들을 좋아하길 바랐을 테고. 고양이가 도요새를 좋아하듯이."
"그렇지만 애들이 날 안 좋아하면?"
"그럼 걔들이 바보인 거지."
메리는 또래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말하지만, 자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학교에서 '보여주며 얘기하기' 시간에 외눈 고양이인 프레드를 소개하며,
"정말 똑똑한 고양이인데 아무도 그걸 몰라. 아무도 얠 이해 못 해. 아무도!"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메리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일반 학교에서 천재성이 드러나며 영재학교에 진학시키는 문제가 불거지자 에블린에까지 메리의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는 7년 만에 나타난 에블린이 수학 영재인 메리의 양육권을 두고 자신의 아들 프랭크와 법정 공방까지 이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메리의 친부까지 나타났고, 그럼에도 자신을 보러 오지 않은 친부에게 실망하여 메리는 또다시 깊은 상처를 받는다. 이 상처를 달래주기 위해서 프랭크는 로베르타와 함께 메리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한다.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 생명의 탄생을 보여준다. 기뻐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네가 태어날 때도 꼭 저랬어."
"저렇게 좋았어?"
"그럼."
"누가 나와서 사람들한테 얘기했어?"
"내가"
"또 보고 가도 돼?"
법정 공방에서 프랭크는 메리를 위한 옳은 결정은 자신과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메리의 선생님, 보니와의 대화에서 프랭크의 속마음이 나온다. 무엇이 가장 무서우냐는 질문에 "내가 메리의 인생을 망치는 거요."라고 답한다.
에블린은 특별한 사람들의 고민을 일반적인 문제로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프랭크는 메리의 앞 날을 자신이 가로막는 것에 대한 고민을 끝내지 못했지만, 결국 위탁 가정에 12살까지 맡기기로 합의하며 영재학교에 보내게 된다. 메리는 같이 살 거라고 약속했던 것이 어겨지고 또다시 버려지는 상처를 경험하게 되면서 프랭크를 외면한다.
괴로워하는 프랭크에게 보니가 찾아오고 프랭크는 쓰라린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첫 몇 주가 지나고 깨달았어요. 진짜 가정을 찾아줘야 한다는 걸. 내 능력이 한참 모자랐던 거죠. 매일같이 '오늘은 아동보호소에 꼭 데려가야지' 생각했어요.
아이의 개성이 폭죽처럼 터졌죠. 재밌는 애예요. 화내다가 행복했다가 슬퍼했죠. 귀여웠고요. 진짜 재밌었죠. 그래서 계속 돌봤어요. 아이한테 최선이거나 내게 아이를 기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내내 메리의 모습은 놀라웠다.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던 반 친구의 미술 과제를 최고라고 칭찬할 수 있었고, 외눈 고양이를 주워와서 사랑했으며, 프랭크의 사적인 삶에 방해가 된 것에 깊이 상처 받아 울었고, 로베르타와 진한 우정을 나누며, 다른 가족의 생명의 탄생을 함께 기뻐했고, 수학 난제를 푸는 것에서도 야망을 가졌다.
메리에게 프랭크가 좋은 사람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똑똑하기 전부터 날 원했거든요."라는 메리의 말에서 드러난다. 프랭크에게 메리의 어메이징 함은 결코 수학적 재능이 아니었다. 편견과 선입견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모습에서 메리의 뚜렷한 정체성이 드러나고, 진정한 교제로 이어지게 된다. 그 안에 재능이 같이 있을 뿐이다.
너와 내가 아닌 아이를 생각하라는 에블린의 말에서 우리는 자칫 착각에 빠지기 쉽다. 에블린의 방식이 '재능을 키우고 대신 아이의 행복을 앗아간다'와 프랭크의 방식이 '행복을 추구하고 재능은 키우지 못한다'로. 이것이 에블린과 프랭크의 착각이었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쉽게 '답'을 정하거나 고민을 거듭하며 어렵게 '답'을 정하고 산다. 그러나 답을 정한다는 것은 수많은 오답을 늘리게 되고 자칫 폭력으로 이어진다. 에블린과 프랭크가 법정 공방을 한 것처럼. 에블린이 프랭크에게 싸우기 싫다고 한 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다만, 정해진 답을 맞혀 살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싸우는 것이다. 그 답 안에 메리가 들어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프랭크로부터 떼어놓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부는 에블린이 정한 답도, 프랭크가 정한 답도 모두 맞거나 틀렸다고 대답한다. 결국 메리는 프랭크와 함께 살며 영재 교육도 받게 된다.
프랭크는 자신이 메리의 인생을 망칠까 봐 두려웠지만 메리는 프랭크의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는 말을 통해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다이앤이 인생의 의미를 잃게 된 것은 천재여서가 아니었다. 다이앤의 인생 목표는 7대 난제라는 인류의 거대한 목표였지만 그 길은 좁디좁았고 목표를 이룬 뒤의 편협한 인생을 돌아보며 허망함이 남았다. "이젠 뭘 하지?" 결국 그녀는 문제를 풀었다고 밝히지도 않고 죽음을 택한다.
인생의 항해에서 표류하지 않기 위한 항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 길은 바다같이 넓은 길이다. 다양한 해류가 존재하고 다양한 인생이 모여든다. 혼자가 아니다. 프랭크와 함께 있어서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메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