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괜찮아! 난 네가 재채기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장 자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서 마르슬랭 까이유가 대화 중 재채기 때문에 미안해하는 르네 라토에게 건네는 말이다.
일러스트 덕분일까, 읽는 내내 행복했다.
마르슬랭은 얼굴이 뜬금없이 빨개지곤 한다. 길을 걷거나, 대화를 할 때나, 친구들과 놀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빨개진다. 문제는 다른 아이들의 얼굴이 빨개질 때 함께 빨개지지 않는 데에 있다. 보통 아이들은 큰 실수를 저지르거나, 화가 나거나, 겁에 질리거나, 부끄러움을 느낄 때 얼굴이 빨개진다. 마르슬랭은 이같이 감정의 요동을 느껴도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 때가 있다. 어른에게 꾸중을 들어도 얼굴이 빨개지지 않는다. 실수로 집안의 물건을 깨부숴도, 감기에 걸려 몸에 이상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마르슬랭은 '다른' 사람이기보다 '틀린' 사람이 되어간다.
"왜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걸까?"
마르슬랭은 평생토록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다. 답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이상한 아이다. 그는 친구들과도 어울리기 힘들어진다. 놀 때마다 얼굴색으로 한 마디씩 던지는 것이 점점 견디기 힘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혼자 노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된다.
"난 새빨간 비행기. 야 정말 재밌다!"
다행스럽게도 마르슬랭은 '그렇게까지' 불행하진 않았다. 그저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을 뿐.
그런 궁금증 속에서 집으로 들어오던 마르슬랭은 계단 위에서 나는 재채기 소리를 듣는다. 새로운 이웃 르네 라토였다. 르네 라토 역시 마르슬랭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감기 기운이 없더라도 '뜬금없이' 재채기를 한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새들의 부드러운 지저귐만이 그의 깊은 고통을 위로해 주곤 하였다."
르네는 바이올린을 잘 켜고, 매력적이고, 훌륭한 학생이다. 하지만 그의 깊은 고통은 누구도 공감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르네는 '그렇게까지' 불행하진 않았다. 그저 코가 근질거리고, 그것이 신경 쓰일 뿐.
재채기 소리에 이끌려 계단 위로 올라간 마르슬랭은 르네와 만난다. 서로의 '뜬금없이'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대화를 자꾸만 가로막는 재채기에 르네는 미안해한다. 마르슬랭의 대답이 놀랍다.
TV 예능 프로에서 한 게스트가 나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느 자식을 잃은 엄마가 있었어요. 장례식에 지인들이 찾아왔고 누구도 자식을 잃은 슬픔을 달래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여성이 다가와 엄마에게 무언갈 얘기했고 둘은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한 여성의 얘기는 '나도 지난달 자식을 잃었습니다'였어요.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바로 공감입니다."
나 역시 동일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이별의 아픔을 심하게 겪은 해였다. 겨우 정신 차리고 세상에 한 발 내딛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많은 친구, 동생들이 이별을 겪고 찾아왔다. 참 다양한 모습으로 이별하더라. 참 다양한 모습으로 아파하더라.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내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저 나 역시 이런 이별을 했고 이렇게 아프다고 밖에 말하지 못했다. 열 명과 이별 상담을 했다고 한다면 나는 열 번 다 똑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들의 감사 인사가 어느 정도의 마음인 지 헤아리긴 어렵지만, 어느덧 나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단 걸 알게 됐다.
"아니, 괜찮아!"
마르슬랭은 누구보다 르네를 이해하는 진정한 친구였다. 혼자 노는 것이 즐거웠던 마르슬랭은 분명 외로웠다. 강물과 새로부터 위로받던 르네 역시 분명 외로웠다. 그 모든 외로움을 탓하지 않았다. 남들에게도, 나에게도. 그것이 '다행스럽게도' 그렇게까지 불행하지 않을 수 있던 이유이지 않을까. 어쨌든 관계에 있어서 약점이라 생각했던 빨개지는 얼굴과 재채기를 통해 둘은 진정한 친구가 된다.
경쟁 사회에서는 약점과 강점을 구별하고 강점을 강화한 엘리트적 삶을 강요받는다. 함께 놀던 친구들은 경쟁의 대상이 되고 그들을 밟고 일어서야만 성공한 인생이 된다. 약점은 제거해야만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마르슬랭 까이유와 르네 라토의 온전한 사귐에서 '약점'은 사라지고 없다.
"에취! 미안해..."
"아니, 괜찮아! 난 네가 재채기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