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작은 Jan 12. 2019

#3. [문학] 편의점 인간 - 목소리가 들려요

 "편의점의 '목소리'가 들려요."

 아쿠타가와상 수상식 당일에도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갔다고 한다. 별명이 크레이지 사야카인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이다.



 식사를 할 때도, 후식을 먹을 때도, 간단한 의약품이나 생필품을 살 때도 편의점을 찾는다. 재난이 닥쳐온다면 일단 편의점에 가서 사는 데에 꼭 필요한 물품을 구비할 것이다. 이 곳에 게이코가 일하고 있다.


 게이코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사회성이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와 길을 걷던 게이코는 죽은 새를 보고는 가져가서 먹자고 한다. 놀란 엄마는 작고 귀여운 새를 묻어주자고 말한다. 의견은 한동안 대립되다가 결국 엄마의 말대로 묻어주게 된다. 어린 게이코는 죽은 새를 묻으면서 무덤 위에 꽃을 따서 장식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죽은 새를 위해 살아있는 꽃을 따다니.

 학교에서는 학우들 간의 다툼 소동이 있어서 큰소리로 말려보지만 쉽게 끝나지 않는다. 말리려는 친구들의 고함에 게이코는 삽자루를 들고 와서 한 친구의 머리를 가격한다. 남은 친구도 때리려다가 저지당한다. 선생님이 이유를 묻자 '움직임을 멈추게 해서 말린 것뿐'이라고 말한다.

 게이코에게서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의 결여 때문에 타인과 공감을 못한다. 보통 우리는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감정의 결여 덕분인지 게이코는 편의점의 기계적인 시스템에 최적화되어 있다. 밝은 인사 소리 역시 학습으로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 기계같이 요일마다, 날씨마다, 시즌마다 준비할 항목들을 대비한다. 편의점의 소리를 느끼고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점원'이 된다. 무엇보다 게이코는 그 점에 만족을 느낀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편의점 일을 하는 것에 안도한다. 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안도는 다시 걱정으로 변한다. 서른여섯의 결혼하지 않은 여성,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게이코. 늘 그렇듯 주변에서는 어엿한 직장을 갖지 않는 것에, 결혼하지 않는 것에 온갖 걱정을 하며 참견한다. 

 게이코는 동생의 조언까지 들어가며 온갖 사회의 요구에 응해보려 한다. 게이코의 '노력'은 외부에서 규정하는 삶의 잣대에 감정적 반감이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사랑하진 않지만 시라하 씨와 동거도 하고 취업을 준비하기도 한다.

 "보통 사람은 보통이 아닌 인간을 재판하는 게 취미예요."


 쉽지 않은 노력으로 익숙했던 삶을 벗어나 첫 면접 일정까지 잡았다. 면접장까지 데려다준 시라하 씨와 잠시 편의점에 들른다. 자동문이 열리며 차임벨 소리, 점원의 인사,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침 점심 피크타임이 시작될 시간이다. 그때 게이코에게 편의점의 '목소리'가 들린다.


 "편의점 안의 모든 소리가 의미를 갖고 떨리고 있었다. 그 진동이 내 세포에 직접 말을 걸고, 음악처럼 울리고 있었다. 이 가게에 지금 뭐가 필요한지,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먼저 본능이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편의점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모든 필요를 채운다. 인턴기간에 있는 점원은 면접 복장을 한 게이코가 본사 직원인 줄 알고 그녀를 따른다. 능수능란한 솜씨에 감탄하는 점원에게 그녀는 편의점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때 화장실에 다녀온 시라하 씨가 손을 낚아채며 호통친다.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거야!"

 "편의점의 '목소리'가 들려요."


 게이코는 편의점에서 철저하게 사회적 일원이 되었다. 정체성을 찾았다. 죽음까지 고사하는 숙명을 찾았다.


 "... 나는 이 목소리를 듣기 위해 태어났어요... 이제 깨달았어요. 나는 인간인 것 이상으로 편의점 점원이에요. 인간으로서는 비뚤어져 있어도, 먹고살 수 없어서 결국 길가에 쓰러져 죽어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내 모든 세포가 편의점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요."


 쳇바퀴 굴러가듯 사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항상 자아를 발견하려 하고 인생의 목적을 찾으려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배웠고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그래서 남의 인생도 관여한다. 다만, 서로의 자아와 삶의 영역은 존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게이코가 대기업 사무실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큰 공장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번듯한 직장에서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우리는 그녀의 삶에 어떤 관여를 할까.


 확실한 건, 누군가 존중하든 안 하든 그녀가 '편의점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 [영화] 어메이징 메리 - 놀라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