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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은 Jan 13. 2019

#7. [문학] 상실의 시대 - 딸기 쇼트 케이크

"딸기 쇼트 케이크를 창문으로 내던지는 그것이?"

하루키 신드롬의 시작이 되었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 숲)에서 미도리와 와타나베의 대화이다.



 내가 상실의 시대를 기억하는 키워드는 딱 네 가지다. '딸기 쇼트 케이크', '미도리', '반딧불이', '섹스'.

 2년 전, 독서에 흥미를 갖게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았다. 각자 취향대로 추천을 해줬지만 돋보이는 것은 단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이었다. 어떤 이는 하루키를 읽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고 했고, 어떤 이는 책을 좋아하진 않지만 하루키 정도는 읽었다고 했다. 그렇게 상실의 시대를 손에 들었다.


 섹스라는 키워드는 풀어낼 필요가 없다. 야한 소설로 통했으니까. 책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야한 재료가 나오는 것에 충격받을 나이도 아녔다. 다만 뇌리에 박힌 이유는 하루키의 표현이 조금 냉소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행위 자체로 감정의 극을 치닫지만 화자는 감정이 절제된 채로 서술한다.

 "나는 페니스를 아주 깊숙이 밀어 넣은 채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그녀를 오래도록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진정되자, 천천히 움직여 오랜 시간을 두고 사정했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와의 섹스 후 편지를 통해 따뜻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답장을 바란다. 그러나 나오코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답장을 해온다. 마음을 나눈 친구, 가즈키를 잃고 나서 이토록 친밀한 감정은 처음 갖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오코의 편지는 더 큰 상실감을 가져다준다. 와타나베의 룸메이트는 호텔 앞에서 주워 온 반딧불이를 주며 와타나베를 위로한다. 와타나베는 반딧불이를 놓아준다. 병에서 나온 반딧불이는 정신을 차리듯 원을 둘러 날다가 이윽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 반딧불이는 상실의 충격에 빠진 자신을 직시하게 해 주며 또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매개체이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문장은 사실 와타나베의 저 물음이 아니라 미도리의 말이다. 미도리는 일 년 내내 백 퍼센트 자신만을 생각하고 사랑해 줄 사람을 찾는다며 말한다.


 "가령 지금 선배에게 딸기 쇼트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면 말예요, 그러면 선배는 모든 걸 집어치우고 그걸 사러 달려가는 거예요. 그리고 헐레벌떡 들어와서 '자, 미도리, 딸기 쇼트 케이크야' 하고 내밀겠죠. 그러면 나는 '흥, 이따위 것 이젠 먹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그걸 창문으로 휙 내던지는 것예요.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거란 말예요."


 미도리의 말에서 사랑과 아무런 관계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와타나베의 질문에 '여자에겐 이런 것이 굉장히 소중할 때가 있다' 고 말한다.


 "딸기 쇼트 케이크를 창문으로 내던지는 그것이?"


 이 대화를 통해서 하루키에 빠지고 말았다. 절제된 표현 속에서 놀라운 통찰을 보여 준다. 인물에 대한 하루키의 통찰은 완전한 인격을 구성해낸다. 미도리는 미도리답게, 와타나베는 와타나베답게. 미도리가 정직하게 말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도리의 정직한 말을 농담이나 장난으로 치부한다. 그럴 때면 미도리는 귀찮아진다. 그리고 진심으로 의아한 와타나베의 저 물음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미도리의 이야기부터 미소는 만연해있지만.


 스무 살 쯤이었을까, 연애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인생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연애라는 것에도 정답이 있고, 정답을 맞혀가는 연애가 좋은 연애라고 생각했다. 미도리는 내가 상정한 정답에서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헐레벌떡 사온 딸기 쇼트 케이크를 버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저 케이크일 뿐 아니라 '마음이 담긴 무엇인가'가 됐기 때문이다.

 연애를 할 당시에야 깨달았다. 정답이라는 것이 없단 걸. 그저 사랑하는 대상에게만 집중했고 '마음이 담긴 무엇인가'가 버려져도 미도리의 말처럼 하게 됐다.

 "알았어, 미도리, 내가 잘못했어. 네가 딸기 쇼트 케이크를 먹고 싶지 않아 지리라는 것쯤은 짐작했어야 했는데. 난 당나귀 똥만큼이나 바보스럽고 무지한 것 같아. 사과할 겸 다시 한번 다른 걸 사다 주지. 무엇이 좋아? 초콜릿 무스, 아니면 치즈 케이크?"


 정답을 체면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체면을 세워야 한다. 체면이 무너지면 안 된다. 그런데, 사랑하는 대상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체면은 '정답'에서 '따위'가 된다. 와타나베가 미도리를 사랑하게 된다면 질문의 뉘앙스는 바뀌게 될 것이다.

 "딸기 쇼트 케이크를 창문으로 내던지는 그것이?"에서 "그럼 무엇이 좋아? 초콜릿 무스, 아니면 치즈 케이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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