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내 오빠구요... 내가 그 사람 동생이에요..."
볼 때마다 눈물을 훔쳐야 하는 강풀의 순정만화 시즌2 바보의 끝자락에 나오는 지인의 대사다.
동네에 바보가 한 둘 있다. 주인공 승룡이는 심성이 착한 아이였다. 엄마가 여동생을 임신하여 친정에 가있는 동안 아빠와 겨울밤을 함께 보낸다. 엄마가 오지 않아 울상을 짓는 승룡이에게 아빠는 '남자라면 힘들어도 항상 웃어야 한다'라고 힘을 준다. 잠을 자던 중 불행하게도 연탄가스가 부자를 덮쳤고, 아빠는 혼신의 힘을 다해 승룡이를 바깥으로 밀어내고는 죽게 된다. 연탄가스에 중독된 승룡이는 사고력이 떨어지는 동네 바보가 된다. 엄마는 승룡이에게 오빠니까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고 가르친다. 병약했던 엄마마저 세상을, 자신을 떠난다. 아빠의 가르침대로 항상 웃으며, 엄마의 가르침대로 동생을 잘 돌보는 착한 바보의 스토리.
강풀의 순정만화 시즌 2의 바보는 어떠한가. 누가 바보인가. 코를 흘리며 말을 더듬는 승룡이가 바보인가. 아니면 허세를 부리며 분을 못 이기는 상수인가. 두려움에 자신의 꿈을 접어버리려는 지호일까. 허영과 사치에 빠져버린 희영일까. 그도 아니라면 이야기의 마지막에 와서야 오빠의 사랑을 깨달은 지인일까.
고등학교를 다닐 때 영어 선생님께서는 가끔 교과서에 나오는 어휘에 꽂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셨다. 이를테면, 순수함과 순진함의 차이를 아느냐는 질문. 수업 과목은 분명 영어였기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입시를 앞둔 우리는 이 질문에 어떠한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놀라운 것은 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 기억에 남는 게 이 질문이라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내려주신 정의로는, 순수는 선과 악을 모두 알면서 선을 택하는 것이고, 순진은 선과 악을 모르는 상태라고 하셨다. 선과 악에 대한 철학적 정리보다는 이 부분에서 "쉐인과 벨커의 이야기"를 통해 살아가는 의미를 선이라 여겨보고자 한다.
여섯 살인 쉐인이 열 살에 암에 걸린 아일랜드 울프하운드(견종) 벨커의 임종을 보는 상황이다. 그의 부모가 이 상황을 통해 분명 배우는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마련한 자리이다. 그러나 벨커의 죽음을 본 쉐인은 혼란스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어른들은 동물의 수명이 짧은 것이 얼마나 슬픈 지에 대해 얘기했다. 조용히 어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쉐인이 말했다.
"전 왜 그런지 알 것 같아요.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라도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서로에게 친절을 베풀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태어나잖아요. 맞죠? 하지만 강아지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태어나기 때문에 오래 머물 필요가 없는 거예요."
승룡이가 선이라는 개념을 모두 알진 못해도 부모님께로부터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웠고 매우 선명하게 사랑을 택하며 살아간다.
승룡이는 지호의 모차르트 작은 별 피아노 연주에 반한다. 학교 피아노 연습실에서 연주하는 지호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려 항상 근처를 배회한다. 어느 날 상수가 친구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기 위해 피아노실에 들어가 담배를 피우고 함부로 버려 피아노실이 다 타고 만다. 근처에 있던 승룡이가 태운걸로 오해하여 잘못을 뒤집어 쓴다. 지호는 화가 나서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한다. 승룡이는 어떻게든 지호의 피아노 소리가 듣고 싶지만 나타나지 말라는 말을 철석같이 지키려 한다.
가장 사랑하는 동생 지인이는 바보 오빠가 부끄럽고 꺼려진다. 내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지인이. 승룡인 지인이의 방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절대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는다.
부모를 여의고 누구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 좋아하던 지호마저 유학을 떠난다. 막연하게 십 수년을 토성 위에 앉아 별을 보며 지호를 기다린다. 지호를 기다리는 자리와 시간은 어쩌면 승룡이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이 자리에 잘못을 뒤집어 씌운 상수가 무작정 들어와서 따진다. 왜 내가 그런게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냐며 죄책감에 화를 낸다. 승룡인 그런 그를 꺼리기는커녕 가장 친한 친구로 환영한다.
마음에 상처로 가득한 낯 선 희영이 역시 무작정 자신의 세계로 들어오지만 신발을 잃은 그녀에게 신발을 찾아주며 도움을 준다.
지인이가 신장 이식 수술이 필요할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신장을 주겠다는 승룡이. 그러나 혈액형이 달라 수술이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승룡이에게 있어서 가장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상수가 혈액형이 같아 이식을 해준다고 했을 땐 고맙다는 말도 없이 온 병원을 뛰어다니며 기뻐한다. 주변에서는 민망해 하지만 절친으로써 상수만큼은 승룡이의 마음을 이해한다.
"... 승룡인 지금 당연하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더라도 승룡인 당연하게 나처럼 했을 거예요. 하하. 지가 원래 그러니까... 지금 이것도 승룡이에겐 당연한 거예요."
같은 사랑을 배우지만 이렇게 선명하게 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강렬한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허세와 힘의 논리에서 사는 상수는 오직 승룡이 앞에서만 무장해제되어 웃음을 지을 수 있다. 부푼 꿈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유학에서 돌아온 지호는 한결같이 자신을 기다려 준 승룡이로부터 자신감을 회복한다. 희영이는 승룡이에게서 잠시 쉬어가며 지난날의 꿈을 되찾는다. 그리고 동생 지인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보는 지인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남들은 승룡이와 소통을 하며 사랑을 나누지만, 지인이만큼은 한결같이 받기만 한다. 그런 오빠의 사랑을 쳐내는 것을 바보 같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도 어렸을 때 괜히 엄마 손을 붙잡고 시장 길에 나서는 것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코흘리개 오빠를 둔 여학생이라면 오죽하랴.
그러나 문제는 신장이식 수술을 앞에 두고 오빠의 사랑을 깨달은 것에 있다. 이제 지인은 오빠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깨닫는다. 늘 붙잡고 다니던 그 손을 깨닫는다. 오빠라는 사실을 숨기고 인정하지 않았던 날들을 후회하며 이제 고백하려 한다. 당신이 내 오빠라고. 그러나 그 고백은 전달되지 못한다.
작은 폭력 조직의 우두머리는 상수와 갈등을 겪고 살인을 계획한다. 부하들에게 희영이를 미행해서 희영이가 만나는 '손에 붕대 감은 남자'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하필 상수와 승룡인 손을 다쳐 붕대를 감고 있다. 희영은 상수의 거처를 묻기 위해 먼저 승룡일 만난다. 부하들은 승룡이를 미행해 혼자가 됐을 때 모습을 드러낸다.
"니가 남상수냐...?"
승룡이는 상수를 죽이려던 폭력배로부터 내 친구와 내 동생을 구하기 위해 태어나 처음으로 거짓을 말한다.
"헤에... 응"
지인은 오빠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지 못한다. 승룡은 자신의 사랑을 아낌없이 전하며 살았다. 누가 바보 같은 인생일까. 오빠의 사망신고를 하러 간 지인인 흐느끼며 가족관계를 고백한다. 그녀의 말이 바보의 사무친 절규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