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해 이야기한 것에 많은 사람이 위로를 얻었다.
광활한 우주의 관점을 얻은 것은 아등바등 살아가는 현실을 작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 광활한 우주를 인식할 개체가 없다면 광활함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구와 1광년 떨어진 별이 비록 1년 전에 죽고 없어지더라도,
죽고 난 1년 동안은 지구에 와닿았을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인식되는 것이 위로였을까?
의도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달리하여 다가온 별빛은,
왠지 존재의 증명 같은 위로가 되었다.
위로를 바란 빛은, 위로를 발한 빛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