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당장 처리해야 하거든"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남자 주인공인 팀이 문 앞에서 유혹하는 첫사랑, 샬롯에게 한 말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영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떤 영화들은 누구에게나 인생영화가 되어주기도 한다. 성급한 일반화는 위험하겠지만 '어바웃 타임'이 그런 영화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했고, 보고 난 후에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실망의 포인트를 '내가 사랑하는 문장'으로 정하게 됐다.
영화에서는 교훈을 준다. 초반에 아빠로부터 시간여행에 대해 듣게 된 팀은 아빠에게 묻는다.
"아빤 이 능력을 어떻게 썼어요?"
책을 읽는 데에 시간을 썼다고 대답한 아빠는 아들에게 너는 어떻게 쓰고 싶냐고 되묻는다.
"여자 친구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팀은 항상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샬롯이 팀의 집에서 2개월 동안 함께 살기 위해 찾아온다. 아름다운 그녀에게 반한 팀은 시간을 써가며 사랑을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하고 시간을 써도 이루어지지 않고 그녀를 떠나보내게 된다.
"아주 큰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시간 여행을 한다 해도 누군가 날 사랑하게 할 수는 없다는 걸."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한 사랑에 대한 실패가 팀을 어떻게 성장시킬지 기대가 된다. 샬롯이 떠난 다음 날, 팀도 미래와 사랑을 찾아 콘월의 집을 떠나 런던으로 간다. 아빠의 극작가 친구인 해리의 집에서 머물며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사랑스러운 메리를 만난다. 이때부터 메리와의 사랑이 시간을 뛰어넘어 이루어져 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메리의 사랑스러움 덕분이었다. 나 자신에게 실망했던 부분은 팀이 메리를 사랑했던 '방법'이었다.
팀과 메리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 사랑에 빠지고 전화번호를 교환한다. 기쁘게 집에 돌아온 팀은 오늘이 해리의 일생일대 최악의 날이었음을 듣는다. 이 날을 바꿔주고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도움을 준다. 때문에 메리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됐고 전화번호는 남아있지 않다. 글쎄. 나였으면 아마 메리를 다시 만나려고 어떻게든 과거로 또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팀은 돌아가지 않는다. 해리에게 일생일대 최악의 날을 다시 겪지 않게 '희생'한 것이다.
팀은 해리와 대화하다가 해리가 들고 있던 신문에서 케이트 모스 기사를 본다. 문득 케이트 모스를 좋아하던 메리의 모습을 기억해낸다. 팀은 당장 케이트 모스의 전시전에 달려가 계속 기다려서 메리를 만나게 된다. 다시 사랑을 찾고 메리와의 동거가 시작된다. 어느 토요일, 팀에게 공연표가 생겼지만 메리는 집에서 쉬기로 하여 직장 동료 로리와 함께 국립 극장에 간다. 공연이 끝나고 첫사랑인 샬롯을 발견한다. 반갑기도 하겠지만 그 이상의 미묘한 감정이 뒤섞이는 게 보인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는지 함께 온 친구를 보내고 팀과 저녁식사를 한다. 어느덧 그녀의 현관문 앞까지 오게 됐다.
"안은 훨씬 더 좋아." 라며 유혹하는 샬롯한테 팀은 이렇게 말한다.
"그럼... 그러니까... 만나서 반가웠어, 샬롯. 정말 즐거웠다. 이제 가봐야겠어.
바로 뒤돌아서 메리에게 달려가는 팀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찬 행복을 느낀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면 당연한 선택이다. 그런데도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팀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첫사랑이라는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샬롯의 유혹으로부터. 유혹에 넘어갔어도 시간을 되돌려 바로 잡을 수 있는 능력도 있다. 본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실수를 되돌릴 수 있다. 이런 생각까지 하고 나니 나 스스로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삶의 최고 가치도 사랑이다. 그럼에도 실수에 관대한 생각이 있는 것이다. 변명하는 태도로 타협하며 살고 싶은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 문장은 문장 자체로 아름답진 않다. 그러나 분명히, 변명하려는 나를 보거나 양심을 어기려는 나를 볼 때마다 떠오를 아름다운 문장일 것이다. 조금 바꿔서 나의 문장으로.
"이제 가봐야겠어. 잠깐의 안정이나 유희를 위해서 지키고 싶은 가치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온 것처럼, 당장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