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업그레이드
"오빠 절대 그러면 안돼!"
처음엔 여자친구 혼자 달래 산책을 시키면서 걱정거리들을 떠안았었죠. 강아지들이랑 신뢰관계가 없을 때 무작정 산책을 하는 건 위험합니다. 강아지 입장에선 겁도 나는데 보호자와도 신뢰가 없다면 탈출하는 경우가 왕왕 있거든요. 그래서 임보 후 바로 산책을 나가지 말라고 권장합니다.
* 중요한 사안이니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강아지들은 보통 무서우면 몸을 숨기는데 보호자와 신뢰가 형성되어 있으면 보호자 뒤로 숨어요. 무서울수록 보호자 옆으로 가는 강아지가 보호자와 올바른 신뢰를 쌓았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평소엔 보호자 옆으로 가다가도 극한의 공포를 느낄 땐 하네스를 풀고 탈출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몇 년을 함께 하고, 콜링이 잘되는 강아지여도 예상치 못한 위협에서는 몸을 숨기다가 길을 잃어버리기에 오프리쉬 산책은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뒤쫓는다 해도 지형지물 틈으로 달려가는 강아지를 따라갈 수 없고, 그런 상황에서 쫓아가면 더 빠르게 몸을 숨기며 도망가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집에서부터 산책연습을 꾸준히 하다가 처음으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산책을 시도할 때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었죠. 하네스줄과 목줄을 채워 꼭 이중으로 안전을 관리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연습하면서 산책의 범위를 점차적으로 늘려갔어요.
이후로 제가 산책에 합류했을 때도 줄을 넘겨주지 않고 그저 따라다니며 배우게 했습니다. 달래와 저는 그녀의 가르침을, 훈련을 잘 따랐죠. 그렇게 학습과 훈련을 마친 후 줄을 잡을 수 있게 되었어요. 힘도 있고, 주의 집중도 잘하는 저의 모습에 그녀는 다소 불안해하면서도 꽤나 흡족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잘만 다니던 길에서 갑자기 겁을 먹은 달래가 안 가겠다고 버텼고, 저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줄을 당겼어요. 별안간 줄을 당기지 말라는 호통이 떨어졌습니다. 강아지가 겁먹고 엉덩이를 빼면서 뒤로 물러나려 할 때, 강아지 앞쪽에서 줄을 당기면 하네스가 벗겨진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랬습니다. 달래나 저나 조금만 더 힘을 줬다면 곧장 풀릴 모양새였어요. 달래는 겁먹었고, 저는 놀랐고, 그녀는 불안했기에 그녀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안심시키며 달래를 안아 들었습니다.
정말 그래야죠. 이런 일이 없도록 이번 일을 통해 업그레이드해야죠.
"앉아, 손, 엎드려, 코, 브이, 뽀뽀!"
산책 업그레이드 - 달래와 우리는 같이 성장하면서 집안, 아파트 단지, 아파트 주변, 동네, 인근 대학 캠퍼스, 중랑천, 운동장까지 산책의 실력과 범위는 업그레이드되었고, 녀석이 마음껏 달릴 때만큼은 아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힘차게 달리는 모습은 마치 이대로 독립이라도 할 것처럼 성장한 모습이었죠.
신체 업그레이드 -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달래의 모습에 정말 매일매일 깜짝 놀랐어요. 식탁 위로 얼굴이 쑥 올라올 때마다 언제 저렇게 키가 컸나 싶었죠. 원숭이 티도 벗어났고 주둥이와 다리는 더 길어져 사람으로 치면 숙녀의 티가 물씬 풍겼습니다. 높아서 냄새도 맡지 못했던 곳들은 이미 입까지 닿아 물건들도 다시 정리해야 했고, 발판이 있어도 잘 오르지 못했던 침대는 훌쩍훌쩍 넘나들었어요.
목욕 업그레이드 - 웬만해선 달래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었지만 가장 큰 목소리를 낼 때는 목욕할 때였습니다. 겁먹은 강아지의 절규였죠. 너무 자주 씻기는 것도 안 좋다고 해서 많이 씻기지도 못했는데 세 번째 목욕부터 떨기는 해도 절규는 하지 않았고, 네 번째 목욕에서는 떨지도 않더군요. 기특한 녀석...
노즈워크 업그레이드 - 외출할 때마다 달래가 노즈워크할 도구들을 만들어 사료를 넣어주고 나갔는데 해결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난이도는 높아져만 갔습니다. 집에 있을 때도 노즈워크 도구로 사료를 준 적이 있는데 (조금 과장하자면) 돌아서자마자 다 먹어서 놀란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료를 하나씩 던져서 받아먹는 놀이도 했더니 그 실력마저 늘더군요.
아! 그리고 각종 개인기도 마스터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낮동안에 여자친구가 대체 무슨 마법을 쓴 건지, 매일매일 찾아왔는데 매일매일 종류가 늘어갔어요. 어느새 '앉아'와 '손'을 마스터했고, 다음 날엔 '엎드려'를, 그다음 날엔 '코'(검지와 엄지로 만든 동그라미에 코를 집어넣는 행동)와 '브이'(검지와 엄지로 만든 브이에 턱을 올리는 행동)까지 보여주었습니다. '기다려'는 아직이었고요.
'우린 아직 다 미생(未生)이야.'
* 드라마 [미생]의 대사
이미 씩씩이(여자친구의 예전 임보견)를 통해 넓어져 있던 그녀의 임보 세계 안에서 달래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고, 저 역시 그녀와 달래 덕분에 성장하며 '우리'의 세계는 더욱 넓어져 갔습니다. 달래도 우리 행동을 점점 이해하기 시작했고, 저도 달래에 대한 이해와 나아가 유기견에 대한 이해를 키워나갔죠.(물론 달래는 유기견이라기 보단 태어나자마자 구조된, 구조견입니다)
이에 대해 아직도 할 말이 많다고 하는 그녀의 말은 살면서 차차 들어보겠습니다. 어차피 우린 아직 다 미생(未生)이니까요. 완생이라고 자부할 수 없기에 배울 수 있고, 정답이 없기에 끊임없이 소통하며 배워갈 수 있죠.
다만 '쉐인과 벨커이야기'에서처럼 강아지가 주는 사랑만큼은 완생의 것과 같아 보입니다.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면 암으로 수명이 다해가는 벨커라는 강아지를 보고 모두가 짧은 견생에 대해 슬퍼하며 아쉬워할 때 벨커가 죽을 때까지 껴안고 있던 6살 소년 쉐인이 말하죠. 사람은 태어나서 행복하기 위해 사랑하는 법을 배우느라 오래 살지만, 개는 이미 사랑하는 법을 알기에 오래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입니다.
강아지들의 짧은 수명에 대한 당위성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강아지가 주는 사랑의 경이로움에 대해 말하고 싶을 뿐이죠.
그러니까 달래의 업그레이드는, 우리를 향한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천방지축 아기 백구 달래든, 성숙한 숙녀 달래든 우린 전부 사랑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