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산타기
"마! 이게 클라이머다!"
달래와 장난감을 던지고 놀거나 터그 놀이를 하면 달래의 신난 몸짓에 비해 금세 끝이 납니다. 게다가 달래가 잠도 많이 많이 자니까 저는 달래의 체력이 약한 건 아닐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여자친구가 아기 강아지들은 보통 14시간에서 16시간 정도는 잔다고 하더라고요.
달래의 체력 걱정은 산책하는 순간 사라집니다. 뛰고 싶어 하는 달래를 위해 전력질주를 하면 분명히 헥헥거리면서 지친 것 같다가도 어느새 줄을 당기며 계속 달리고 싶어 해요. 오히려 제가 지쳐서 더 이상 못 달리죠.
그런 달래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체력을 쏙 빼놓기 위해) 우리는 산행을 결심했습니다. 클라이머로서 자연 바위를 잡으러 갈 때 달래도 데려가기로 한 것이죠. 그렇게 정한 첫 산행지는 모락산이었습니다. 자주 등장하는 최 모 씨와 함께 말이죠.
저와 최 모 씨는 패드를 매고 있었기에 여자친구가 달래를 데리고 우리보다 천천히 산을 올랐습니다. 낯선 장소라 그런지 여기저기 냄새를 맡아대는 달래 덕분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던 것이죠. 속으로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럼 그렇지.. 마! 이게 클라이머다'
"오빠, 나 죽을 것 같아..."
그래도 산행이 적성에 맞았는지 달래는 곧잘 따라왔고, 여자친구가 도전할 바위에 지체 없이 도착했습니다. 예전에 한 번 도전했던 문제라서 몸은 조금만 풀고 곧장 문제를 풀기 시작했죠. 몇 번의 실패로 그녀가 패드 위로 떨어지자, 그 소리에 놀란 달래가 조금 겁먹은 눈치였어요. 다행히 그녀는 V4 난이도의 문제를 금세 풀어버렸습니다. 이제 다음 행선지는 달래의 이름을 정했던, 크롱 바위!
최 모 씨와 저는 결국 문제를 풀진 못했지만, 자연 바위에 오르는 매력은 단번에 성공하지 못해도 어려운 길을 여러 번 찾아와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데에 있답니다. 손 끝에서부터 시작된 인체 구조 하나하나가 작은 틈부터 정상까지 이어진 커다란 바위와 호흡을 맞춰가는 것이죠.
우리가 바위에 매달리는 동안, 여자친구는 놀란 달래의 가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아서 달래를 데리고 주변을 돌고 있었습니다. 크롱 바위의 지대가 높은 편이라 산책로가 잘 보였는데 그녀와 달래는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아주 바삐 산을 타더군요. 최 모 씨와 저는 숙제였던 문제도 잘 풀어버린 그녀가 신나 보였어요. 사랑하는 달래도 산을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돌던 그녀는 낙엽들을 헤집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올라왔습니다. 달래가 조금 진정이 된 것 같냐고 묻자 더 신나서 안 되겠다고 하더군요. 본인이 죽을 것 같다고 말이죠.
찰리 채플린이 그랬던가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요.
"다시는 안 갈래..."
놀란 가슴은 진정됐지만, 신난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은 달래 덕분에 진이 빠질 대로 빠진 그녀는 달래와 더 이상의 산행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산할 때도 신나게 달리려는 달래 때문에 위험해서 거의 안고 내려오다시피 했던 것이죠. 달래에 대해 저보다 여러모로 책임감이 강한 그녀는 체력도 체력이지만 온 신경을 쏟아붓느라 더 피곤했을 거예요.
우리는 그녀의 마음을 잘 이해했습니다. 최 모 씨가 말했죠.
"근데... 달래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최 모 씨는 달래의 마음까지 잘 이해했더라고요. 그녀는 최 모 씨의 말을 듣고 차 안에서 품에 안긴 달래를 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그렇지... 엄청 좋아했지...?"
정확히 일주일 뒤에 달래를 데리고 불암산으로 향했습니다. 일행은 더 많았는데 '사람 좋아' 달래에겐 축제였죠. 여자친구는 비슷한 레벨의 일행들이 있어서 함께 바위를 잡아보긴 했으나 욕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 문제 풀이보다는 달래와 소풍을 나오는 마음으로 왔으니까요.
해가 기울어 하산을 하고 몇몇 일행들과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차 앞에서 익숙한 멘트가 들려왔어요.
"다시는 안 갈래..."
산타기 본능이 깨어난 달래는 늘 신나게 산을 탔는데, 오르막길은 그렇다 쳐도 내리막 길에서도 뛰니까 무척이나 위험했죠. 그래서 매번 하산길에 무거운 달래를 안고 오느라 같은 멘트가 반복됐습니다. 물론 최 모 씨의 멘트도 함께 말이죠.
"달래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 치...?"
"달래야? 왜 그래? 나 알잖아?"
그렇게 2주 뒤에 다시 찾은 불암산! 약속은 안 했지만 어쩌다 재회한 일행들과 추가된 일행들까지 불암산의 바위 앞은 클라이머로 북적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만난 달래가 반가워서 아는 체를 하는 준 모 씨(준 씨 성은 아주 드뭅니다)와 김 모 씨에게 '사람 좋아' 달래가 웬일로 경계를 했어요. 2주 전에는 반겼는데 지금은 경계를 하니 서운할 수밖에 없었죠. 저와 여자친구까지 당황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달래의 모습이 의아했습니다. 자리가 불편해서 그런 걸까 생각했지만, 친숙한 최 모 씨에겐 잘 다가갔어요. 심지어 처음 만난 송 캡틴 양께도 평소와 같이 잘 다가갔으니... 아마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을 조금 무서워하기 시작했나 봅니다. 그래도 집에서 봤으면 분명 희뇨를 날려주며 반겼을 거예요.
집에 돌아와 달래를 목욕시키며 그녀가 말하더군요. 아무래도 천지 분간 못하는 아기에서 이제 뭔가 파악하기 시작한 거 같다고요.
그녀의 말대로 태어난 지 5개월 된 아기 백구 달래가 '천진난만', '순진무구'의 탈을 벗어가는 중일까요?
그렇다면, 녀석의 경계심 마저 응원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사리분별하면서 조금은 천천히 마음을 열어가는 맛도 알아가는 거죠 뭐. 그저 달래가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자란다면야 바랄 것이 없습니다.